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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25. 2019

FUJAIRAH 급유 항의 심해 투묘

처음부터 끝까지 윈드라스 역전 방법으로 투묘함.


 아직 어둠에 짙게 묻힌 바다 위에는 불빛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있건만 레이더 화면을 통해 보이는 FUJAIRAH 앞바다 위에는 지금 화려한 점들의 축제로 환하기만 하다.


 이런 곳을 뚫고 들어가 구석자리 하나 찾아내어 내 몸 한자리 떠 있을 곳에 투묘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심정 위에 은근한 걱정이 드리워진다.


 정말 저곳 어디에 우리 배가 안전하게 닻을 내릴 수 있는 장소가 있을 수 있을까? 드는 걱정을 억지로 잠재우며 선속을 낮추기 시작한다.


가까이 보이는 정박선의 불빛과 레이더 상의 환한 점과 일치시켜서 확인하면서 정박선들의 틈새의 빈자리를 연결해가는 침로로 조심히 전진을 계속한다.


 수심이 140여 미터에서 100미터를 넘나드는 깊은 쪽을 택하고 있는 이 정박지가 야속하기만 한데 그래도 이 많은 배가 모두 그런 곳에 투묘하고 늠름히 몸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한결 위안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투묘하고 픈 자리가 있는 곳을 향하기 위해 좁은 배 사이사이의 공간을 누비기 시작한다.


 130미터부터 알려 주기 시작한 수심이 어느새 98미터까지 줄어들고 있다. 욕심을 내고 있는 80미터 아래의 수심 대역까지 얼마의 거리가 남아있지 않은 곳에 도착할 무렵, 도착 투묘 예정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나간 것을 보충하기 위해 그냥 이 자리에 투묘하리라 작정한다.


 보통의 투묘 작업이라면 닻을 COCKBILL 상태(주 1*)로 까지 내려주었다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면 그냥 촤르르 내어주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윈드라스를 돌려서 체인을 풀어주면서 닻을 내려 주는 심해 투묘 방식을 써야만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깊은 수심에 드리워질 닻과 체인 모두의 하중이 겹쳐져서 걷잡을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흘러내려가기 때문에 잘못하다간 체인이 다 풀려 나가도록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권양기 손상은 물론 묘와 묘쇄 모두를 잃어버리는 불행한 사건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윈드라스를 천천히 역전시켜 돌려가며 체인을 내어 주므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가면서 내는 커다란 소음도 없이 닻은 언제 해저에 닿았는지도 모르게 조용하게 투묘가 이루어졌다.


 잠시 닻줄의 긴장상황을 체크하려고 내어줌을 멈추었다가 제대로 잘 잡힌 것으로 판단하여 원하던 길이의 묘쇄량까지 내어 주도록 지시한다. 9 샤클 수선상까지로 결정한 대로 일등 항해사는 체인을 더 내어주고 제대로 잘 박혔다고 보고를 해 온다.


 북위 25도 14.147분 동경 056도 33.8분의 수심 98미터가 되는 위치에 9 샤클의 묘쇄를 내어주고 도착했다는 보고를 FUJAIRAH항만 당국에 보고해 주었다.


 처음 여섯 시 도착 예정으로 알렸었기에 그 시간에 준비하고 있겠다던 벙커 바지선이 VHF로 우릴 부르고 나선다.


 어느새 어슴프레 밝아 오기 시작하는 여명 속에 벙커 바지는 천천히 우리 배의 우현으로 다가와 줄을 잡아달란다. 모두가 급유를 위해 분주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밤새워 도착한 피곤 조차 잊어버린 듯 날쌔게 움직여 주고 있다.

FUJAIRAH 육지의 산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가운데 벙커 바지가 임무를 끝내고 본선을 떠나고 있다.


닻을 다시 감아 들인 후 MUSCAT를 향해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FUJAIRAH에 정박하고 있는 어느 탱커의 모습.


주 1* ;  COCKBILL 상태, 통상적인 투묘 작업을 위해 닻의 하방이 수면상에 닿을 듯 말듯하게 내려주어 미리 투묘 준비를 해준 상태를 말함. 닻의 투하 명령을 받으면 즉시 죄어 놓고 있던 윈드라스의 브레이크를 열어주어 닻과 체인의 무게로 체인이 풀려나가서  투묘가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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