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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24. 2019

MINA SAQR 항, UAE

그야말로 험한 산길을 넘고 깊은 물을 건너 머나먼 길을 재촉해 왔다고 이 보다 더 힘들 것인가?


 마음속에는 항상 해적에 대한 떼어버리기 힘든 공포감이 스며 있어 좋은 날씨를 만나게 되어도 그들이 준동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니 싫고,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지나가는 배들의 모습 역시 혹시나 해적선(?)하는 의심부터 들어서는 게 두렵고 싫었다.


 이미 지나쳐서 서로 꽁무니가 멀어져 가고 있건만 어쩌면 그 배에서 원하지 않는 작은 배가 떨어져 나와 다시 우리 배의 뒤쪽을 노리고 따라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항상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속에 밤을 새우며 페르시안 걸프의 대문 격인 호르무스 해협을 통과하여 무사히 찾아온 항구가 아랍 에미레이트의 MINA SAQR항이다.


 대리점을 통해 알려 온 입항 서류의 준비가 꽤나 까다로워 보여 이 또한 은근히 걱정을 가지고 그들이 도착 3시간 전에 VHF16 찬넬로 항만당국을 부르면 접안 계획에 대한 연락을 줄 것이란 안내만 믿고 열심히 달려서 오전 7시에 도착한다는 마지막 보고를 이멜로 했었다.


 3 Hours prior to arrival pilot station, contact Saqr Port Control on VHF Ch.16 for berthing Instructions. 이란 말을 야간 지시 록에 남기어 당직 항해사들이 입항에 즈음한 사전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여 놓으며 잠자리에 들었었지만 그런 보고가 나가야 할 만한 시간이 되니 내 먼저 절로 잠이 깨어 브리지로 올라간다.


 그렇게 정확히 도착 세 시간 전부터 포트 컨트롤을 불렀지만 제대로 응답을 해주지 않아 맥이 풀린 상태로 다시 부르기를 여러 번 해서야 겨우 응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잠에서 덜 깨인듯한 목소리로 우리 배에 대한 여러 가지 인적 사항을 물어본 후 도착하면 즉시 파이로트가 승선하여 입항한다는 말을 해와 그나마 그에 맞추도록 속력을 조정해가며 항구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남겨두고 다시 우릴 부른 항만당국에서 조석이 맞지 않아 좀 더 기다렸다가 입항해야겠단다.


 고조시 12미터라는 제한된 흘수에 맞추어 도착하고 있었는데 그 빠듯한 흘수가 좀 더 고조시에 가까운 때에 움직여야겠다는 결정이 난 모양이다.


 일 건 입항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갖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진행이 삐끗하니 어긋나는 것은 가장 김 빠지는 일로서 한숨을 쉴 형편이지만 어쩌겠나 싶어 그냥 덮어주며, 그럼 언제 도선사가 타게 되느냐고 물으니 잠시 있다가 연락을 하겠다며 10분만 기다려 달란다.


 이미 정지시킨 배이지만 타력에 의해 항구의 도선사가 타겠다고 연락해 준 위치로 점점 가까워지는 상황에 은근히 안달이 난다. 시간을 확인하여 이미 약속했던 10분은 그냥 지나쳐 버린 상황이니 우리가 먼저 불러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바쁘게 부르기로 한다. 


 대답하고 나온 그 사람들 이제 9시로 도선사를 수배했으니 그때 태우도록 준비를 하란다.


 얼마나 남은 시간인가 그때의 시간을 보니 닻을 내려주고 기다린다고 하기엔 너무 빡빡한 짧은 시간이다. 


 닻을 내려주면 금세 다시 감아야 할 정도의 형편임을 감안하여 닻은 쓰지 않고 그냥 엔진만 세워서 드리프팅으로 9시 도선사 승선에 대비하기로 한다.


 이렇게 바쁜 일정에 빠져 들다 보니 그동안 해적에 대한 노이로제로 띵했던 머리가 오히려 밝아지며 그런 걱정에서 벗어난 것이 실감되어 사람 살맛이 살아난다.

 MINA SAQR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산 마루에 걸쳐서 떠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여명의 순간.


병풍을 두른 듯 해변가 뒤로 물러서 있는 꺼멓게 보이는 산의 실루엣이 점점 밝아 오는 걸 보며 아침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음을 짐작한다. 그러나 산이 높아 8시가 가까워오고 있는데도 아직 붉은 해의 눈은 떠 오르질 않고 뿌옇게 밝아 오는 기운만이 산정의 허리 위로 조금씩 더 해주고 있다.


 드디어 파이로트가 연락을 해왔다. 좀 더 방파제 앞의 부표 옆으로 다가서도록 요청한다. 멀리 물살을 가르며 도선사를 태운 도선선이 항구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항구는 그냥 해변가에 방파제를 빙 둘러쳐서 내항을 만들었고 그 안에 고만고만한 핸디 사이즈의 배를 안벽에 올망졸망하니 접안시켜 놓은 모습으로 반갑게 우리 배의 접근을 맞아준다.


 부두에는 그랩을 장착한 크레인이 무슨 거인나라의 수문장이나 되는 듯 뻐기는 모습으로 죽 둘러서 있고 주위에는 그들이 배에서 퍼 올려 쏟아 놓은 각종 돌가루들이 원뿔형의 작은 피라미드 모양을 만들어서 서로의 크기라도 재어보려는 듯 쌓여 있다.

부두는 적 양하를 위해서 무더기로 쌓아 놓은 이런저런 여러 종류의 돌가루 무더기가 쌓여 있다.


 그 사이사이를 움직이는 각종 중장비들이 움직이며 뿜어내는 먼지가 부두 위에 뿌연 연무 같은 반투명의 답답한 대기를 만들어 주니, 환한 태양 아래의 광경이지만 좀은 어눌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방파제를 들어서서 부두에 접근하고 있는데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예정은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파이로트가 타서 접안을 끝내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안전하게 부두에 대기 위해 좀 일찍 엔진을 쓰는 모션을 취하다 보니 실제로 접안하는 데는 수월찮은 시간이 더 걸리는 형편으로 한 시간 48분이 지난 후에야 모든 계류삭을 깨끗이 동여매 줄 수 있었다.


 부두에 접안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양하 작업 준비를 해 놓고 있다.

본선 선미 쪽 부두에 접안하여 이곳에서 나오는 LIME STONE을 선적하고 있든 홍콩 선적의 선박 모습.


그렇게 우물거리며 접안을 끝내었고 입항 수속도 완료하고 난 후 점심을 먹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볼 즈음에 나는 우리 배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산들의 모습을 보면서 으스스한 느낌 속에 빠져 들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그냥 해골산의 모임이라고 하는 게 알맞은, 바싹 메마른 그림자 같은 날카로운 산들의 실체가, 유난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부두 위의 곳곳에 쌓여 있는 각종 돌가루 무더기와 똑같은 색깔을 띠운 채 무심한 모습으로 나를, 항구를 내려 다 보고 있다.


 이런 삭막한 산의 모습은 사막을 가까이 두고 있는 중동 지방을 방문하는 경우 누구라도 처음으로 보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환한 햇빛 아래에서의 창연한 슬픔 같은 두려운 무거움을 갖게 하며 다가드는 정서이기도 하다.

황량해 보이는 항구의 배경이 되어주는 산의 모습. 쌓여 있는 돌가루 무더기는 이들이 수출을 하는 LIME STONE이다.

  밤새 우리 배에서 퍼 올린 FELD SPAR가 부두에 수북이 쌓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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