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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1. 2019

쌍가락지 끼고 물 위에 나타난 앵카

앵카로 낚시를 한 셈이네

 조석이 변하여 유속이 최강으로 치달릴 무렵이 되면 싯누런 흙탕물이 여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곳이라 10 샤클까지 내어준 닻줄이었다. 하지만 그 조류의 힘이 워낙 견뎌내기가 힘들어 속절없이 닻이 끌리는 일이 발생했다.


 투묘 위치의 변화를 추적하도록 세팅을 해 준 DGPS 화면에 나타나는 흔적은 통상 O형으로 그려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꺼림칙한 마음이 드는 W자 모양을 그려 내고 있다. 심상치 않은 ANCHORING POSITION의 변화를 알려주는 상황이다.


 당직사관들은 모두 하역작업의 준비로 비워지게 된 브리지에서 혼자 레이더를 비롯한 모든 항해계기를 관찰해 본 최종 결과는 앵카가 끌리고 있다는, 바로 DRAGGING ANCHOR 상황이 벌어졌다는, 심증을 굳히게 한다. 


 당장 기관을 준비하고 닻을 감을 수 있도록 전 부서의 스탠바이를 긴급으로 아나운싱 하여 지시한다.


 모든 부서가 준비를 끝낸 후 선수 부서로 나가 닻의 감아 들이기를 시도하던 일항사가 닻이 잘 올라오질 않고 너무나 많은 장력을 받고 있다고 보고해 온다.


 천천히 감아 들이기를 계속하라고 지시하며 체인에 장력이 미치지 않게 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올 때까지 엔진을 사용해 주기로 한다.


 워낙 조류가 빨라서 SLOW AHEAD 엔진 사용쯤에는 앞으로 나갈 생각을 포기한 듯한 모양을 보이고 있어 좀 더 앞으로 나서게 하려고 HALF AHEAD 엔진까지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의 줄다리기 끝에 닻이 선저에서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으며 재차 그 앵카를 사용하여 투묘하려고 우현 묘 투묘 준비를 지시한다.


 잠시 후 닻이 수면 상부로 완전히 올라 온 상태를 확인하던 일항사가 앵카 크라운에 바지선 등에서 펜더로 사용하던 커다란 자동차용 폐타이어 두 개가 반지를 착용하듯이 끼어져 올라왔다는 보고를 한다.


 앵카에 이 물질이 부착된 상태로 투묘한다면 아무래도 닻의 파주력에 영향을 주어 또 끌리게 될 것이란 명약관화한 판단이 들어서기에, 타이어를 제거한 후 사용하도록 지시하여, 반대쪽의 좌현 묘를 빨리 스탠바이 하도록

했다.


 그리고도 한참 동안 엔진을 더 사용하여서야 재 투묘를 원하던 곳에 도착한다. 


<렛 고! 포트 앵카!>를 발령하며 재 투묘를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체인이 제대로 풀려 나가지를 않는다는 긴급 상황의 보고가 들어온다. 


 묘 작업은 정확한 투묘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 시간 다툼의 작업이다. 즉시 윈드라스(권양기) 기어에 체인을 얹어서 WORK BACK으로 내주도록 지시한다. 



 앵카 체인이 절로 풀려나가며 내는 촤르르! 하는 시원함을 잊은 채, 체인은 권양기의 역전에 의해 강제로 풀려 나가는 상태로 투묘 작업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원하는 체인의 반출량에 도달하여 브레이크를 걸어 제동을 걸도록 한다. 


 잠시 후, 앵카 체인이 쭈욱 앞쪽으로 뻗어나가며 탱탱하니 장력을 가지며 당겨지는 상황이라는 보고가 들어온다.


 좀 더 지켜본 후 닻이 잘 박혔음! 이란 마지막 보고를 받은 후 뒤처리하고 해산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진한 아쉬움이 남아서 재 투묘에 대한 상황을 직접 현장에서 되돌아보려고 선수로 나갔다.


 먼저 투묘된 좌현 묘의 체인 상태부터 자세히 살펴본 후, 이어서 타이어를 장착하게 된 우현 묘의 수납 상태를 보기로 한다. 

우현 BULWARK 너머로 힘겹게 목을 늘여서 내려다본 눈길에 수납된 우현 앵카의 크라운이 들어선다.



 마치 사랑의 표지로 삼아 신부의 손에 끼워준 쌍가락지라도 되는 양, 두 개의 자동차용 폐타이어가 오른쪽 크라운에 꽉 조여진 모습으로 들어차 있다.


 어느 바지선에서 FENDER로 사용하던 자동차 폐타이어를 그대로 바다로 폐기된 것이 물속에 갈아 앉아 있다가 심하게 해저를 긁어내듯이 끌리던 본선 앵카의 크라운에 제대로 끼어져 나타난 것이리라.


그만큼 이곳 항만의 해저는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어 이 항구의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짐작하며 혀를 차는 수밖에 없는 심정이 답답하다.


 가락지 같이 타이어를 꿰어 찬 우현 묘는 자신이 쌍 가락지를 껴도 될 만큼 떳떳하다고 폼이라도 잡고 있는 듯 당당해 보인다. 


 조류에 끌리며 억지로 끼워진 타이어지만 마치 자신의 손가락에 맞추어 만들어진 가락지를 패용한 듯 한, 흠잡을 데 없는 어울림을 보여주도록 꽉 끼어진 모습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게 한다. 


 언제라도 떼어내야 하는 불필요 한 물건이다. 해체하도록 지시하면서 우선은 당장 더 바쁜 일부터 처리한 후 하도록 기간의 유예를 주기로 한다.

가락지 낀 손가락을 자랑하듯 내 보이고 있는 모습의 수납된 우현 묘.


 어떻게 저렇게 끼어줄 수 있었을까?


이런 일은 그리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기에 하지라 항의 선저에는 너무나 많은 투묘 작업을 해치는 불순물이 많다는 증거로 봐도 될 거다.

가락지 낀 손가락 때문에 일에서 열외 될 수 있게 된 여인네 마냥, 싯누런 황톳물 속으로 들어가야 할 일에서 제외된 우현 묘가 싯누런 흙탕물의 해면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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