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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6. 2019

무장 경호원을 태워주세요


가슴이 부글거리며 끓는 흥분 속에서 이멜을 작성하고 있다.


먼저 받을 사람들을 적어 넣고 보내는 우리 배의 이름을 적은 후 제목을 써넣는다.


<해적 출몰 보고>라는 타이틀을 넣어서 제목을 삼아 놓고 수신한 텔렉스의 원본을 돋보기를 통해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서 베껴 나가기를 시작한다.


 SUB: 해적 출몰 보고


 본선은 쿠웨이트 SHUAIBA 외항에 투묘하여 접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착선의 작업이 늦어져 본선 접안도 지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일 TLX로 수신한 아래와 같은 해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의외의 장소에 출현한 것으로 통보되어, 보고 하오니 업무에 참조 바랍니다. 


 아  래


TO: ALL SHIPS TRANSITING GULF OF ADEN / OFF SOMALIA/ARABIAN SEA/INDIAN OCEAN/OFF OMAN


 WARNING WARNING WARNING


 30.01.2011 AT 10:13 UTC : 25:01 N - 060:26 E : A MERCHANT VESSEL WAS ATTACKED BY TWO SKIFFS IN ABOVE POSITION WITH GUNS.


 VESSELS ARE ADVISED TO EXERCISE EXTREME CAUTION WHEN NAVIGATING WITHIN 100 NAUTICAL MILES OF THE POSITION GIVEN IN THIS REPORT AND MAINTAIN CPA WITH ANY SHIP ACTING SUSPICIOUSLY.


 EARLY ASSESSMENT / DETECTION WILL BE ALLOW SHIPS TO TAKE EVASIVE MEASURES TO PREVENT BOARDING AND REQUEST FOR ASSISTANCE.


 ALL ATTACKS AND SUSPICIOUS SIGHTINGS INCLOUDING POSSIBLE PIRATE MOTHER VESSEL TOWING SKIFFS SHOULD BE REPORTED


 IMB PIRACY REPORTING CENTER. 


24 HOURS ANTI-PIRACY HELPLINE : +603 2031 0014

30-01-2011-11:19 


 상기 해적 출몰 장소는 본선이 금 항차 PG에서 인도를 다니며 이용한 항로로서 이란에 가까이 접근하여 일말의 안심하는 마음을 가지며 통항한 바로 그 침로선 위의 지점으로 앞으로 본선이 이곳을 출항한 후 미국을 가기 위해서도 꼭 통과해야 할 곳입니다.


 호르무스 해협을 빠져나가면서 바로 만나게 되는 그 장소에 해적이 출몰했다는 소식에 현재 우리 모두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 불안하여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을 지경입니다.


 무장 경호원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지금부터 알아봐 주셨으면 바라는 마음에서 우선 알려 드립니다.


 OO호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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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밤중임에도 급하게 보고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은 착잡하고 초조함 그 자체였었다.


해적이 나타나서 상선을 공격했다는 장소가 며칠 전 우리 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항해하여 이곳 페르시안 걸프로 들어왔던 바로 그 항로의 침로 위 장소와 거의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이란의 연안으로 육지가 수평선에 선명히 부각되어 보이는 곳이다. 해적들은 그런 남의 나라 국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타나서 선박을 납치하는 돈벌이를 하려는 것이다.


 회사 담당부서의 직원들도 그런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같이 걱정하면서 용선주를 통해 경호팀을 승선시키도록 일을 진행하겠다는 이야기를 이미 해주었었다. 


 한술 더 떠서 그런 경호원들을 태우기 위해서는 무스카트에 기항하여야 하며 그때 철조망도 같이 선적하여 아라비아 해의 최근 해적이 출몰하는 해역은 피해 가며 항행하게 될 것이란 말까지 덧붙여 주어 한결 걱정을 덜어내는 기분으로 기대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야기의 방향은 자꾸 퇴색해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예정하고 있는 항로에서는 아직까지 경호원을 태우는 경우가 없었다고 용선주가 주장한다며 점점 더 본선의 이야기와 우려를 피해 가려는 응대를 느끼게 하는 통화 태도여서, 회사로 전화를 연결할 때마다 느느니 초조한 마음뿐이다.


 구정의 연휴가 이어지는 날들이 다가올 무렵, 그들은 본선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충분히 나타나게 말했지만, 그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의 진행으로 경호원을 태우는 일의 진행은 포기한 상황임을 은연중 밝히고 있었다.


 연휴로 인한 연락사항을 몰아치기 식의 발송으로 마무리하면서 본선이 그 기간 중에 경호원 승선이란 명제에서 마음 돌려주기만을 바란다는 눈치가 보이는 상황으로 여겨졌다.


 접안한 후에 승선하여 계속 우리 배에서 숙식을 하며 검사를 하고 화물 선적을 도와주고 있든 SHIPPER 측의 서베이어는 현지(쿠웨이트)의 텔레비전에서 한국 해군 청해부대의 활약상을 보여 주었는데 아주 멋졌다고 이야기하며 그런 해군의 도움으로 무사히 항해를 완수하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말까지 덧붙여 준다.


  아울러 소말리아 해적들을 인터뷰 한 모습도 함께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앞으로 한국 선원을 인질로 잡으면 무조건 그대로 처형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하는 듯한 이야기도 덧붙여 주었지만, 그것은 우리들 마음에 격려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듣는 이의 사기만 꺾어주는 어수선한 루머일 뿐이다.


 더하여 나는 아들과 함께 타고 있는 개인적인 형편도 있으니 만약에 우리 배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우리 집안은 다른 선원 가족들보다 두 배의 고통을 더 겪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상황 살핌이 그렇게 진행되자 괴로움이 가중되면서 어찌해야 하나를 곱씹어 보지만 더 발전된 생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의 소용 도리에 휘둘리고 있다. 머리만 지끈거리며 피곤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나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회사의 담당자들과 새로이 연락을 할 때쯤, 이미 내 마음은 경호원 없이 RAZOR WIRE를 선적하여 철조망을 치고 항해하는 것에 동의한 상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좀은 한심한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자조를 꿀꺽 삼켜주며, 이런 상황 아래의 해적 침입에 대비한 최선의 철저한 준비로 마음을 돌리기로 했다.


 이렇듯 해적에 대한 쓰디쓴 마음 때문에 상선들은 선단을 이루어 함께 달리는 시간을 동무와 함께하는 듯이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달리다 보면 각선은 가는 곳이 다르고 속력도 제각각이니 어느 정도에선 절로 흩어져 가게 되는 것이다. 

사진은 본선의 스크루 흔적을 따라 같이  선단을 이루어 달리던 배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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