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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7. 2019

교대 하선자의 기쁨에 들뜬 모습

흘러넘치는 본능적인 기쁨의 모습 

인도양에서 오랜만에 만난 황천의 날씨이다.

   만약에 바다 위에서 만나는 <기피하고 싶은  일 리스트>라도 만든다 치면 이런 날씨는 당연히 맨 앞줄에 세울 수 있는 싫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시간에 만나고 있는 황천의 날씨는 해적들이 활동할 수 없는  기상 상황을 만들어 준다는 이유로 인해 모두들 안심하는 마음이라 즐겁게 마중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더욱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뜨이고 있다.

그 친구는 197X, 년 OO월 생의 O이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나다니던 해역이었는데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소말리아 해적의 상선 공격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곳 쿠웨이트에서 교대 하선하기로 결정된 O항사는 공포의 아라비아 해를 안전하게 피해 갈 수 있는 행운아(?) 같은 위치가 되어 버린 셈이다.


 이미 불혹의 나이에 이르게 되었으니, 성인의 말씀을 안 빌리더라도 벌써 철이 들은 반열에 오를 만하건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하선 할 O항사이다. 요사이 표가 나게 기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곤 하는 그의 모습은 마주칠 때마다 은근히 열 받치게 만들어 주는 표상이 되어가고 있다.


 항아리 안쪽 같은 위치의 페르시안 걸프 해역이다. 그곳을 떠나게 되면 아라비아 해는 필히 통과할 수밖에 없는 바깥쪽의 길목이다. 지금 그 바다로 필연적인 항해를 나서야 할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선내 분위기는 계속 싸늘하니 식어 가면서 선원들은 입을 꾹 다문채 눈치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당연한 연가 교대를 하는 것이지만, 이런 때에 쿠웨이트에서 하선하는 행운을 유일하게 가지게 된 O항사의 형편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동료들 앞에서 그는 자신만이 하선하여 집에 간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기쁠 수가 없는지 혼자 걷다가도 누구라도 만나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참을 수 없어하는 웃음기를 얼굴에 피워 올리곤 한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하고 스쳐 지나던 그를 향해 시침 떼고 물어봤다. 


-집에 가게 된 게 너무나 좋지 않습니까? 

 하는 솔직하게 돌아온 대답이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금 배 안에 남아있게 된 선원들의 분위기는 마지못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은 심정이 되어, 이 해적이 날뛰고 있는 바다를 건너야 할 모험에 대해 불안과 울분의 마음을 삭이며 초조한 조바심에 빠져 있는 판이다.


 선내 분위기가 이렇듯 걱정스레 착 갈아 앉게 된 것은 이곳 페르시안 걸프를 두 번에 걸쳐 찾아들면서 인도 해안을 따라 안전 항로라고 믿고 항행했던 곳에서 지난 1월 31일 해적의 집적임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부터 더욱 심 헤진 것이다.


 특히 그곳은 이란의 연안으로 육지의 윤곽이 빤히 보이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해적선이 나타나서 상선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우리들에겐 절망적이다 싶은 비장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연가 사명을 받은  O항사가 이곳 쿠웨이트에서 교대자를 만나 하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주 기분 좋은 그야말로 붕붕 날고 싶은 신나는 상황을 맞이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헌데 그는 자신만이 집에 간다는 특혜를 마음껏 즐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자랑하고 싶은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어서인가? 풀 죽어 있는 동료 선원들에 대한 일말의 배려조차 망각한 채 만날 때마다 싱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아! 자네만 좋다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지...... 

 라고 말을 해도 기쁨의 창틀로 변한 그의 얼굴은 마음의 창인 눈과 입이 활짝 피워내는 웃음꽃을 가려주질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남아야 할 동료들은 집에 가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어쩔 수 없어서 질 머진 책임감, 불안감과 좌절감, 이 모든 감정을 복합적으로 뒤섞은 가운데 누군가 내뱉는 < ~카더라> 하는 한마디에도 귀를 곧추 세워가며 애달파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만 좋아 있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빙긋거리는 모습을 마구 날리고 있는 O항사의 대비되는 태도는 더욱 얄미움 속으로 빠져 들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속에서 치솟는 쥐어박고 싶은 충동마저 참아 내면서, 나 또한 인간이기에 풍부한 질투나 질시의 감정이 나타나는 것이겠지…. 라며 덮어 버리기로 했건만.....


 -부럽죠? 

 마지막으로 교대하는 자리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자신을 교대해 주려고 우리 배를 찾아왔다가 격정에 휩싸이게 된 신임 교대 O항사에게, 하선하는 O항사가 해준 말이라는 후문에 다시 한번 혀를 끌끌 찼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그의 기뻐하던 표정은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어쩌면 인간 본연의 가장 정직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입을 삐쭉이려는 배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이해해주기로 하자!>는 말을 건네가며 그의 하선 배웅을 해주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두고두고 내 뇌리에 섭섭하게 각인된 보통 사람의 표본처럼 되어버린. 그 친구의 마음을 표본화된  현미경의 시료 유리라도 건사하듯 소중히 챙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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