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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9. 2019

이중의 철조망을 선체에 두르다

RAZOR WIRE로 이중의 철조망을 선체 둘레에 쳐주며


 회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어 용선주를 통해서 수배한다고 했던 이제나 저제나 태워 준다던 무장 경호원의 동승이란 명제가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분위기를 감지하며 초조해지는 마음 달랠 길 없다.


 앞으로 아라비아 해/인도양을 빠져나가는 어려움에 보탬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의 위로를 삼으려 했던 일이 어그러지면서 선원들의 얼굴 표정 역시 많이 어두워진 것 같이 여겨짐은 나 혼자만의 짐작은 아니다.


 막말로 나는 두 사람의 가족이 함께 동승하고 있으니 만약에 해적에 의한 인질 사고라도 벌어진다면 우리 집에서는 두 배의 슬픔을 안게 된다는 두려움에 마음이 긴장되니 아들과 동승한 일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예상되는 어려움을 경호원이란 전문가와 함께 대처해 나갈 수 있다면 그나마 바람직한 일이라 여기던 마음이었다. 이제 그들의 동승이 불가능한 쪽으로 흘러가는 눈치로 보이는 분위기에 부글거리는 안타까움이 짜증을 부르고 있다.


 회사는 이제 대해적 방호 대책으로 경호원은 포기하고 RAZOR WIRE라는 철망으로 본선 외판 핸드레일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서 우리가 동참해 주도록 설득하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어쩔 수 없는 입장 차이가 갖는 의미를 재삼 반추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뜻에 따른 출항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판단이 속을 긁어내며 마음을 아리게 한다.


 출항 전에 갑판 위에 실어준 RAZOR WIRE의 ROLL의 숫자를 확인한 후 미화 8천 달러가 넘는 대금을 지불해 주었다. 


 해적이나 해상강도의 위험이 많은 곳을 기항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 곳에 들르기 전에 미리 강력하게 청구해서 받아 둔 선용금이 일을 무사하게 진행되게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기로 한다. 만약에 현금의 선용금 가진 것이 없었다면 이곳에서의 RAZOR WIRE 수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습도가 조금만 높아지면 작업을 중단한 채 기다리는 식의 지지부진한 UREA 선적작업 패턴이지만 그래도 엿새 만에 선적을 끝낸 SHUAIBA, KUWAIT에서의 출항은 밤 열한 시가 넘어서면서 시작되었다.


 어둠 속의 방파제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내리겠다고 보채는 도선사를 하선시켜준 후, 이제 갈 길을 가야 할 때가 되었는데 갑자기 울린 선내 전화벨 소리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이런 시간에 오는 전화는 별로 바람직한 소식을 갖지 못한 비상의 상황을 알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엔진에 이상이 있다는 기관실에서의 연락을 받는다.


 아무래도 말썽 부리는 엔진을 점검하여 긴급 수리한 후에야 떠날 수가 있겠다는 기관장의 전언에 어쩔 수 없이 포트 컨트롤에 보고한 후 긴급 투묘를 하였다. 밤 12시가 넘어설 무렵의 시간이다.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니어서 두 시간여의 수리를 끝나자마자 다시 닻을 감아 떠난다. 새벽 4시에 급유지에 도착하여 또 닻을 내리니 기다리고 있던 급유 바지선이 우현으로 파고 들어와 접선을 한다.


 기관 수리와 투, 양묘 작업으로 인해 더욱 피곤에 절어 있는 선원들에게 바쁘다고 서둘러가며 RAZOR WIRE의 바리케이드 설치를 독려하기에는 너무 무리라 여겨져 급유를 끝낸 후 출항하던 아침. 모두에게 그냥 과업 없이 하루를 쉬라고 지시한다. 


 그렇게라도 부려본 여유로 인해 HORMUZ 해협을 빠져나가기 전의 이틀 정도 있든 시간에서 이제 하루 정도 남은 기한 내에 RAZOR WIRE의 설치 작업을 끝내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아침이 찾아왔다. 어느 정도 피곤을 걷어 낸 선원들이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바람이 슬금슬금 불어오더니 어느새 백파를 일으켜 세우며 약간의 선체 동요마저 만들어 준다.


 다행히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갑판 위로 파도가 올라오지는 않으니 작업에는 방해가 안 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마음을 갖게 해 준다.


 예정했던 대로 HORMUZ를 벗어나기 전의 오후 시간대에 설치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게다가 작업 중에 다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결과에 한결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하려는 바다를 본다. 


 아라비아 해로 들어서며 변침을 했지만 선미 스크루 커런트의 모습 위로 계속 뒤 바람은 잦아들질 않고 오히려 세어지는 모습을 더 해준다. 이 또한 은근한 기쁨으로 다가선다. 


 이런 정도의 바람이 있어 파도와 같이 있게 해 준다면, 조그마한 스피드 보트인 해적선이 본선에 달려들기란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 되므로, 그들에게 당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배를 타는 선원이 파도치고 흔들리는 날씨를 진심으로 반가워한다는 아이러니에 세상은 참말로 뒤죽박죽 한 일의 단면들이 함께 어울려 있는 곳임을 새삼 스레 확인받은 기분이다.


 밤부터는 어디서 해적이 찾아올지 모르는 해역으로의 접근이 시작되니 전 선원이 교대로 해적 조기발견을 위한 특별 당직 팀에 조별로 동참하여 철저한 경계가 시작되었다.


전 선원이 교대해가며 철조망 설치에 여념이 없다.


먼저 갑판에서 철조망을 풀어내어 원하는 선체 외부 건현부 상부로 들어내어 묶어주기를 한다.


파이로트 래더가 있는 곳은 더욱 꼼꼼히 열린 공간을 막아주는 작업을 해준다.


선수부에서 선미부 까지 두 줄로 철조망을 쳤다.


선미부에 아래쪽 것을 치고 난 후 다시 그 위로 더쳐야 할 RAZOR WIRE ROLL의 모습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을 끝내고 나니 그만큼 해적 침입을 막을 수 있게 방비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안도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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