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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3. 2019

모두가 좋아 하지만 나는 싫어요

선내 시간을 돌려주면서

 많은 흔들림에도 짐짓 여유를 보이며 벙커 바지에서 본선으로 곤돌라를 이용해 급하게 옮겨 타는 본선 2 기사의 모습.


 벙커링을 할 때면, 사운딩 등으로 가장 바쁜 2 기사의 모습처럼, 배에는 대부분의 남들이 원치 않는 일일지라도 누군가는 꼭 해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책임지고 분담하여 일을 진행함으로써 선내의 질서는 유지되는 것이다.


 밤 당직 시간이 이미 시작된 브리지에서 자신의 당직 중에 할 일로 부여된 일을 시작하면서 3 항사가 말한다. 

 -배에서 남들은 모두가 좋아하는데 나만은 싫어지는 일이지요.

 난생처음 배를 자신의 일터로 삼게 된 삼항사가 주어진 일에 손이 익을 만할 때가 되면, 한 번쯤 은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일이 바로 이 일이다.


 밤낮없이 목표로 삼은 항구를 찾아 바다 위를 달려야 하는 배에서는 자신이 달려간 만큼의 지구 상 위치에 따라서 사용하는 지역 시간이 다름으로 인해 그 지역의 시간에다 계속 자신(배)의 시간을 맞춰 나가도록 시계를 돌려줘야 하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돌리기 위해서는 배가 가는 방향에 따라 동쪽으로 가면 시간을 당겨주고 반대로 서진으로 항해를 하면 늦추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바꿔주는 시간대를 거의 대부분의 한국 상선에서는 저녁 여덟 시의 선내 시간대를 택하여 실시하고 있다.


 이 여덟 시라는 시간대는 통상 3 항사가 당직을 시작하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결국 시간 돌림의 행사는 그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때 동진으로 가는 경우에는 돌려준 만큼 당직시간이 짧아지는 경우라 그만큼 당직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니 이때는 기분이 좀 좋아지기도 하겠지만, 서진으로 갈 때에는 반대의 상황으로 그만큼의 시간이 늘어 난 당직으로 임하게 되니 특히 이때만큼은 싫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오늘 밤이 그렇게 3 항사 당직 시간 중에 시간(시계)을 되돌려 주도록 야간 지시 록에 지시해 둔 날로서, 마침 브리지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찾아온 시간이 1시간 후진해야 할 때가 되었던 거다. 


 저녁 9시를 다시 저녁 8시로 만들어 주기 위해, 3 항사는 해도실 안으로 들어가 선내 공동 시계를 관장하는 MASTER CLOCK 앞에 서면서, 

-배에서 남들은 모두가 좋아하지만, 나만은 싫어하는 일을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라며 시간 돌려주기를 시작하려 한다. 오늘은 한 시간 더 당직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 잘해 봐라!

나 역시 배를 처음 타던 때 인 오래전에 이미 경험하며 느꼈던 일이기에 간단히 응대해 준 것이다. 시간을 조정하려고 거꾸로 돌아가면서 내는 유난스레 재깍거리는 MASTER CLOCK의 소리를 귓전으로 흘려주며 윙 브리지 바깥으로 발길을 내디뎠다. 


  이미 어둠이 깔려버린 선수 전방을 살피던 시선을 자연스레 거두면서 얼굴을 들어 시선을 밤하늘로 향해준다.

그곳에는 앞 만을 바라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우리 배가 머리에 이고 있는 인도양의 하늘이 활짝 펼쳐져 있다. 


 기다란 띠를 이룬 은하수가 그대로 폭포 되어 쏟아져 내릴 듯이 시야를 압도하는데, 살랑살랑 찾아드는 달리는 바람결 따라 하늘 가득 차 있는 별빛이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 듯이 얼굴 위로 퍼부어주고 있다.


 이렇게 어둠과 별빛 만이 어울린 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이 바다 위에서 떨어진 별빛들을 주워 담아서 다시금 뿌려내주듯이 갑자기 파란 인광을 뿜어내는 물결이 BULBOW BOW 가 갈라 내쳐주는 움직임 따라 선수 좌우의 검은 수평선 위에서 유연하게 밀리며 퍼져 나가고 있다.


 이른바 야광충이라 불리는 풀랑크톤이 군무로 펼쳐내 보이는 섬찟한 푸른빛 도는 야광이 깜깜한 한밤중의 해면 위로 선수재(STEM)가 갈라내 주는 잔 파도를 따라서 춤추고 있는 모습이다.


 저절로 고였던 침이 목젖 너머로 삼켜지며, 뒤쪽으로 돌려주는 발걸음 따라 눈길은 자연스레 배가 지나쳐 온 선미를 향한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촘촘하게 쳐진 그물 밭 사이를 지나쳐 왔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간담이 떨어지는 것 같은 철렁함에 화들짝 놀란다.


 푸른 빛깔의 인광 덩어리가 프로펠러의 힘찬 휘저음에 흔들리며 계속 뒤로 흐르다가 비산하며 만들어 내는 번쩍거림이, 마치 풍어를 기원하며 그물의 위치를 표시하려고 밝혀 준 어망 부표 위 등불이 너울거려 내는 것 같은 착각을 잠깐 동안이나마 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선수 쪽에서 팔자수염이라도 그리는 듯 배의 양쪽으로 퍼져 나가던 인광의 덩어리가 뒤로 밀려 나가다가 프로펠러 물살에 휘감겨 그렇게 흐트러진 등불 같아졌다는 사실을 확실한 진실로 믿게 될 때까지의 잠시 동안 놀랐던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착각에 빠지게 했던 뒤쪽의 어둠 속에서 눈길을 거두면서 고개를 바짝 뒤로 꺾어 눈길을 다시 하늘로 향한다. 


 자정을 향하여 점점 더 깊어져 가는 시간 속의 흐르는 은하수 속 어느 물가에서 오리온 좌의 별들이 정렬해 준 네모의 한 복판에 숨어있던 삼태성이 반가운 눈인사라도 하려는 양 기울인 한일자 모습 되어 반짝이며 내려다보고 있다. 점점 깊어져 가는 어느 날의 한 밤중 인도양의 풍경 속에 그냥 그렇게 젖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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