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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Aug 22. 2023

아빠의 아빠가, 자녀의 자녀를 만나다.




  아가가 태어난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아기 사진이나 영상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늘 아가의 안부를 물으신다. 때때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육아지식에 감탄하기도 한다.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을 것 같던 아버지 모습에 놀랄 때면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신다. "아빠가 너희들한테 참 잘했다"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서른 하나의 나이에 나를 낳으셨다. 이미 형을 낳아 기르고 계셨으니, '서른 하나'라는 나이에 네 식구의 가장이셨다. 나는 서른 하나에 겨우겨우 사회인으로서 한 발을 내디뎌 비빌 언덕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낳으셨던 '서른 하나'를 훌쩍 넘긴 나이에 자녀를 낳고 길러보니, 내가 아기였을 때 우리 아버지는 어떠했을까 문득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 그러하듯, 아버지도 꽤나 무뚝뚝하셨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으셨고 다정함, 살가움과는 거리가 있으셨다. 아버지와 따뜻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파트 단지 구석에서 캐치볼을 하며 놀았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즐겨하는 모든 운동은 거의 다 아버지께 배운 것들이다. 축구, 농구, 야구, 볼링, 탁구 등등.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을 지난 어느 시점부터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아빠가 너희들한테 참 잘했다"라고. 



  중학교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성적표를 나눠주셨고, 부모님 서명을 받아 제출하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학급 석차 1등, 전교 석차 1등"이라고 쓰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고, '드디어 아버지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들떠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께 당당히 성적표를 건네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말없이 성적표 구석구석을 훑으셨다. 그러다 묵직한 한 마디를 던지셨다. "수학 점수가 많이 낮구나.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다른 점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학 점수만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96점. 그날 아버지랑 대판 싸웠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무뚝뚝하고 냉정한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는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전과 다르게 따뜻해지셨다. 말씀도 많아지셨고 농담도 잘하신다. 전에는 영 다가서기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였지만, 지금은 헤어질 때마다 꼭 안아드릴 정도로 쉬운 상대? 가 되셨다. 아버지를 안을 때마다 한없이 크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의 옛 모습을 떠올려본다. 



  지난 주말, 부모님께서 아가를 만나러 오셨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그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감히 1등 성적표에 비할바가 아닌 이 작고 소중한 것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 같아 마음이 무척이나 설렜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대판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으시는 듯 보였다. 아가 앞에서 재롱을 부리시는 아버지를 보며 다시 한번 옛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아가일 때 분명 아버지의 모습이 이러했을 텐데, 무엇이 아버지를 그리도 거칠 게 만들었던 것일까.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 된 이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자녀가 낳은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 마음 또한 지금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아가를 앞에 두고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 마음'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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