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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Aug 26. 2023

새벽이 주는 달콤함 (feat. 라면)




  육아를 하느라 낮과 밤이 뒤바뀐 삶을 산지도 벌써 몇 주가 흘렀다. 늦은 저녁 무렵부터 쪽잠을 자다, 새벽 육아를 위해 밤 12시 반 전후로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야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이제 몸도 이 라이프에 적응을 한 것 같다. 이제 알람 없이도 번쩍 눈이 떠지니 말이다. 막 모유 수유를 마친 아내와 '하이 파이브'를 주고받으며 아가를 건네받는다. 은은하게 켜져 있는 수유등을 배경으로 '꿀떡꿀떡' 아기의 분유 삼키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하다. 살면서 이렇게 평화롭고 고요한 시공간을 느껴본 게 언제인가 생각해 보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맘마를 배에 가득 채운 아가는 곧 곯아떨어진다. 첫 번째 미션 완료!



  두 번째 미션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 살포시 닫힌 방문을 뚫고 아가의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심스럽지만 민첩하게 방문을 열어 아가를 살핀다. 거의 100%의 확률로 아가가 배고파 보내는 신호이다. 아가의 기저귀를 갈아준 뒤 재빠르게 손을 씻고 분유를 타서 아가를 품에 안는다. 막간을 이용하여 커튼을 살짝 걷고 창문을 조금 열어본다. 하늘에 마치 '그라데이션' 효과를 넣은듯하다. 서쪽 하늘의 짙은 어둠과 동쪽 하늘의 옅은 밝음 그리고 그 사이의 밝음과 어두움의 어스름함이 존재하는 광경을 보며 잠시 황홀함을 느껴본다. 별 탈 없이 두 번째도 미션 완료.



  두 번의 미션을 완료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내 허기가 밀려온다. 그래서 라면을 끓여본다. 저녁식사를 마친 지 이미 10시간이 훌쩍 지났다. 무엇보다, '엄청 중요하고' '아주 섬세하고' '매우 고난도'의 미션을 '두 번이나!' 클리어한 상태이기에, 배가 고프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달걀 하나를 투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동안 접해본 적 없었던 새벽녘의 공복감. '그래도 새벽에 라면은 투 머취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칼칼하면서도, 따뜻하면서도, 빈 속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그 무언가는 '라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결과는? 대만족. 새벽 육아를 맡은 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라면이 왜 맛있는 가에 대해 사색 따위를 해보았다.

1. 고된 노동 후 먹는 것이기 때문에? 

2. 고요하고 적적한 분위기가 라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에? 

3. tv에서는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입맛을 돋우기 때문에? (새벽시간에는 '윤식당', '삼시세끼'가 꾸준히 방영된다) 

4. 창문 틈새로 들려오는 새소리, 개구리소리, 빗소리 등의 자연 소리 때문에? (자연의 소리가 면발에는 감칠맛을, 국물에는 진한맛을 더해준다)

5. 몰래 먹어서 ? 

사실 5번 이유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마치 특수부대 요원처럼, 은밀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고요한 새벽, 라면봉지를 뜯는 소리는 흡사 천둥소리와도 같다. 열심히 환기를 시켜 의식의 흔적을 지워본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난 아내는 말한다. '또 라면 먹었어?'



  새벽에 먹는 라면맛은 정말 미라클이다. 계속되는 고된 육아 속 작은 행복. 

  고요한 새벽에 맛보는 미라클 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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