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Aug 29. 2023

까만 눈동자




  우리 아가가 태어난 지 만 2개월이 지났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던 핏덩이가 이렇게 쑥 커버렸다니. 잔뜩 뭉개져 있던 눈, 코, 입, 귀는 뚜렷한 이목구비로 변했고, 불그스름하니 팥죽 같던 피부는 뽀얀 우유처럼 맑아졌다. 먹고/자고/싸고 밖에 할 줄 모르던 작은 생명체가, 이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팔다리를 허우적 대면서 모험을 떠날 준비를 마친 탐험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첫째 딸은 무조건 아빠를 닮는다는 진리 아닌 진리가 있다. "이대호는 이대호를 낳고, 이운재는 이운재를 낳고, 이천수는 이천수를 낳고, ... 오지헌은 기적을 낳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 아가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도 기적을 낳는 아빠가 되길 바랐다. '아내가 임신 기간 내내 주말부부였기 때문에, 아가가 아빠의 영향을 아주 아주 적게 받지 않을까?'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염원 삼아. 



  산부인과 신생아실 창 너머로 처음 마주한 아가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긴 눈매로 보았을 때 아직은 기적을 바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의 면회를 오가다가 드디어 아가가 살짝 눈을 뜬 모습을 보았다. '이 눈매는 다 훼이크인가...'라는 내용의 대화를 아내와 나누었던 것 같다. 긴 눈매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눈이라 매우 당황했었다. '왜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지...' 아내의 아까운 눈총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만 2개월 아가의 눈은 몰라보게 커졌다. 팔다리가 점점 토실토실에 지듯, 눈도 점점 똘망똘망해지는 듯하다. "나도 기적을 낳았다"라고 말하지만, 아내는 "커봐야 안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사실 아무렴 어떤가.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만 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하면 아내는 "적당히 아프기도 하고, 적당히 다치기도 하면서 커야지 건강하게 쿨 수 있는거지!" 라고 덧붙인다. 가끔 아내가 F가 아니고 T인 것 같다 -_-;;)



  초롱초롱 빛나는 아가의 눈, 거울같이 맑은 아가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은 생명체를 돌보는 수고의 몇 곱절 이상의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그 어떤 의도나 목적 없는 순수한 눈 맞춤. '나'라는 존재에 오롯이 의지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이 아가의 눈동자 덕분에 오늘도 고된 육아를 견뎌낼 용기가 샘솟는다.



  아가의 '맑게 까만' 눈동자에 맺힌 내 모습을 본다. '아가도 내 눈동자에서 저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내 눈동자가 너무 탁해지고 흐려진 건 아닐까?' 우리 아가는 오랫동안 맑게 빛나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세상의 수많은 행복을 발견하는, 반짝이는 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아빠가 해야 할 일 추가 !




작가의 이전글 새벽이 주는 달콤함 (feat. 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