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다. 일하는 것은 둘째 치고,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저 하루 종일 침대에 드러누워, 어서 빨리 몸 안의 면역세포들이 힘을 더 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만 할 뿐이다.
하. 지. 만.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 아이가 아직 의사소통조차 원활하지 못한 영유아라면? 그리고 그 영유아가 아직 어린이집에도 다니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정말 그야말로 '파국'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줄이야.
2024년 연말에는 장염 덕분에? 아주 알찬 시간을 보내며 한 해를 마무리할 수있었다. 다행히 아내가 급하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아이를 곁에 두고 사경을 헤맬뻔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겨우 한 주가 지났을까?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감기 증상이 서서히 피어오르더니, 주말 아침부터 오한과 두통에시달리기 시작했다. 주말이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아내가 출근해야 하는 평일이었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까지 나의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아내는 더 이상 휴가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을나서야만 했고, 축 처진 몸으로 헤롱대는 나는 하는 수 없이 '눕육아' 모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라도 다녔다면...'이라는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지만, 현실은... 아이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집구석이었다. 아이는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빠를 곁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흐느적거리며 아이를 좇아 다니다가, 결국 돌고 돌아 거실 소파라는 종착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소파에 누워 눈만 꿈뻑이며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내복바람으로 집안 곳곳을 이리저리 오가는 아이를 향해 눈알만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내 얼굴 앞에 자기의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웅얼거렸다. 나는 "아빠가 지금 아야 해서 그래 미안해~"라고 말했다. 아이는 거실 구석에 있는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스티커 북에 있던 웬 깍두기 반찬 스티커를 뜯어다가 나의 이마에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호~'하며 싱그럽고 따스한 입김을 불어주었다. 아... 그 순간 하마터면? 다 나을 뻔했다.
하루 종일 '눕육아'를 하며 굴러다녔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의 밥때가 되면 아에게 밥을 차려 줄 수 있었고, 아이가 응가를 하면 엉덩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는 몸 상태였다. 아이도 아빠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던 것인지, 평소보다 낮잠도 일찍, 오래 자주었고, 밤에도 칭얼거림 없이 금세 잠들며 아빠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아픈 몸을 이리저리 휘둘러가며 육아를 하다 보니, 부모로서 가져야 하는 무한한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삶은 이제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나의 시간과 노력뿐만 아니라 건강과 안전까지도 우리 가족의 공유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 중에 '멋쟁이 히어로'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라서 평소에 자주 아이에게 불러주는 동요이다. 그런데 아픈 몸을 밀고 끌며 육아를 해보니, 그 동요 가사가 너무 무섭게, 한 편으로는 너무 슬프게,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매우 비장하게 느껴졌다.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정녕 영웅과도 같은 존재여야만 하는 것!
오늘도 아이를 재우면서 멋쟁이 히어로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래! 이제 아빠는 그만 아파야겠다'라고! "기운 센 슈퍼맨, 만능 원더우먼, 엄마!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