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하지만, 서운해 할 수 없다.

by 이기장


아이가 태어난 지 21개월이 되었다. 나의 육아휴직도 그에 비례하여 정확히 21개월이 되었다. 보통의 경우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출산휴가를 쓰고, 이어서 육아휴직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사용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좀 더 정확하려나.


아내는 출산 휴가 중에도 가끔씩 출근을 해야 했다. 아내에게 육아 휴직은 그야말로 언감생심. 아내는 출산 휴가를 마치자마자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아내가 출산 휴가 중이었던 기간에도, 나는 육아 휴직 중이었다. 때문에 아내는 전업으로 육아를 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업'이라는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전업 육아란 다음과 같다. 1. 적어도 6개월 이상, 2. 타인의 도움 없이, 3. 배우자가 퇴근하기 전까지 홀로 육아를 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아내는 전업 육아를 경험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내가 전업 육아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이따금씩 아내가 툭 던지는 말들 때문에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일 안 하고 집에서 애 보는 게 얼마나 좋으냐, 나도 집에서 아이랑 뒹굴거리고 싶다', '우리 아이는 얌전한 편이라 육아하는 게 힘들지 않을 거다. 다른 집 애 보면...', '애 보면서 요리도 좀 해보고, 아이 먹을 반찬도 만들어 놓으면 좀 좋으냐' 등등.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당신은 애를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라고'


사실 나도 할 말이 많다. '나는 누구보다 좋아하는 일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당장 출근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출근해서 동료들이랑 어울리고 싶고, 일하면서 월급도 받고 싶고, 받은 월급으로 눈치 보지 않고 소비도 하고 싶다고. 그리고 나도 휴직하면서 경력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라고.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아내)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당신 직장이 가깝고, 친정이 있는 곳에 터를 잡았다고. 그래서 아는 이도 없고, 만날 이도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롭게 아이랑 씨름하느라 속으로 울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부모님이 계신 곳에 집을 얻어다가 부모님 도움 받으면서 육아했을 거다'라고.


할 말은 아직 더 남아있다. '밥 투정하는 애를 어르고 달래면서 삼시세끼 먹이는 게 쉬운 게 아니라, 아이 밥 먹이느라 나는 세끼 중에 한 끼도 마음 편히 밥 먹을 때가 없다고. 매일 방바닥을 쓸고 닦고,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널고 개고, 화장실 청소에,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분리수거에, 아이가 가지고 논 장난감 정리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집안일 때문에 정신없다고. 그런데 당신은 나갔다 와서 옷정리라도 제대로 하고 있냐고, 신었던 양말을 빨래통에 제대로 넣어 놓은 적이 몇 번이나 있느냐'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올라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불평과 불만, 투정과 화를 차마 내뱉을 수 없다. 아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만의 육아 전쟁이 이어지고 있듯,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아내의 치열함이 늘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의 고됨은 나의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새벽마다 깨는 아이는 엄마가 아니면 달랠 수 없다. 아이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재빨리 달려 나가 달래 보려 수없이 애를 써봤지만, 결국 엄마여야만 했다. 엄마는 그렇게 포근한 밤잠을 포기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아이 눈에 엄마가 보이는 순간, 아이에게 아빠는 없는 존재가 된다. 엄마도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테지만,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며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피곤함을 덜어낼 새가 없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있든 그렇지 않든, 늘 아이 생각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 나의 육아의 고됨을 아내에게 주장할 수 없는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아내가 아이를 품고 버틴 10개월이라는 시간, 그리고 아내의 아랫배에 남아 있는 흉터라는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분노와 짜증도 결국 이 분명한 이유 앞에 수그러들 수밖에.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하며 매일 아침마다 굳게 다짐한다. 오늘은 꼭, 반드시, 진짜로, 정말로, 진실로 퇴근하는 아내를 웃으며 마중하겠다고. 하지만 그 다짐은 지는 해와 함께 늘 저 멀리 사라진다. 작심'한나절'도 안 되는 나란 놈... 아내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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