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모의 시간에 잠시 머물다.

by 이기장


병원 물리치료실에 누워 치료를 받던 어느 날이었다. 희미한 통증 위로 피아노 연주곡이 들려왔다. ‘섬집아이’였다. 눈을 감고 조용히 가사를 떠올려보았다. 홀로 마당을 서성이고, 마루를 뒹굴며 노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를 둘러싼 한적한 바닷가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던 순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이들도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자동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라면 꼭 먼저 메시지로 통화 가능 여부를 물으신 후 전화를 주시던 엄마였기에, 갑작스러운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결국 침대 구석으로 몸을 돌린 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엄마의 맏며느리의 오빠, 그러니까 나에게는 형수님의 오빠 되는 분이 지난 새벽,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조문 일정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형수님의 오빠는 20대 초반에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다. 그 후 합병증으로 인해 오랜 시간,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쉽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식사도, 외출도, 그 어떤 평범한 일상도 허락되지 않았던 20여 년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끝내 삶을 마무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을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가까운 이의 부고였기에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다시 치료실 침대에 몸을 맡겼다. 잠깐 멀어져 있었던 피아노 선율이 귓가를 맴돌았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가사를 떠올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힘들게 굴을 따고 집에 돌아오는 일상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부터 곤히 자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잠들어 있던 그 아이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면, 그 엄마는...


형수님의 오빠를 돌보며 20여 년을 보내신 사돈어른들의 삶이 그려졌다. 한창 꽃필 나이에 병을 얻은 아들을 돌보며 곁을 지키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결국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만 그 마음,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일 것이다.


치료실의 하얀 천장이 뿌옇게 보였다. 몸의 통증은 어느새 느껴지지 않았고, 마음 한 편의 먹먹함이 진하게 다가왔다. 눈을 감고 기도 했다. 떠나간 고인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어느 부모를 위해.



raw?se=2025-04-17T15%3A06%3A38Z&sp=r&sv=2024-08-04&sr=b&scid=0c7dfc93-b2de-5d9a-8b5f-e85568d9a0c9&skoid=7c382de0-129f-486b-9922-6e4a89c6eb7d&sktid=a48cca56-e6da-484e-a814-9c849652bcb3&skt=2025-04-16T21%3A25%3A17Z&ske=2025-04-17T21%3A25%3A17Z&sks=b&skv=2024-08-04&sig=mJ25EU5GOrvrOR8%2BiviHsWaP3Jjutc2PtecNh6PKKWA%3D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도 아빠는 아이 뒤를 졸졸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