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3월 한 달 내내 어린이집 적응을 힘들어하며, 태어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울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어르고 달래면서도,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곧 어린이집에 적응할 테고, 복직 전까지 혼자만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이상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 콧물을 훌쩍이더니, 그 때로부터 기나긴 감기와의 전쟁을 이어갔다. 아이는 수시로 병원에 드나들었고, 한 달 내내 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약통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지만, 아이의 콧물은 좀처럼 마를 줄 몰랐다. 그러다 기침이 심해졌고,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뒹굴던 나도, 감기와의 전쟁에 참전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웬만하면 감기쯤은 약 없이 넘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종일 함께 지내다 보니, 나을 듯 말듯한 감기 증상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경미했던 감기 증상은 2주가 지나면서부터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 극심한 목 통증과 고열, 몸살로 인해 병원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감기는 골병 파티의 서막에 불과했다. 감기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목에 담이 왔다. 어깨에서 목까지 뻣뻣하게 굳어버려 아이를 안고 업는 일이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나는 한의원을 오가며 물리치료를 받았고, 얼마 되지 않는 아까운 자유 시간을 침대에 누워 수많은 침바늘과 함께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또 한 번 큰 고비를 맞았다.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해댔다. 진단명은 '장염'이었다. 아이를 간호하는 동안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혹시 나도?'... 그랬다. '역시 나도!'였다.
다행히 아이는 병원을 다녀와 약을 먹자마자 금세 장염을 이겨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오한과 설사, 구토와 몸살로 3일을 내리 앓아누웠다. 다시 병원을 찾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수액을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골골대다 보니 3월과 4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화려한 복귀를 꿈꾸었지만, 몸도 마음도 추스를 새 없이 복직의 그날로 내몰리고야 말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이제 다시 조종사로 돌아가지만, 마음 한편엔 언제나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초보 아빠에 머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아빠, 더 책임감 있는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제, 새로운 이륙을 준비할 시간이다.
"Ready for depar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