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은 언제 시작될까? 많은 사람들이 헬멧을 쓰고,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고, ‘로터 회전 이상 무!’라는 말이 나오면 비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얘기다. 진짜 비행은 조종석에 앉기 전, 조종사들이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기울이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도 보통 기장과 부기장이 함께 비행한다. 일반적으로 기장이 더 경험이 많고, 연식(!)도 좀 더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항공 안전 분야에서 사용하는 개념 중에 ‘권력 거리 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가 있다. PDI는 구성원들이 권력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지표의 값이 높을수록 상하 간 거리감이 크고, 낮을수록 평등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종석에 앉은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권력의 높고 낮음이 존재한다. 즉, 조종석에 나란히 앉은 두 조종사 간의 PDI 값이 크게 되면, 기장이 실수해도 부기장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결국, 사고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터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제대로 된 비행은 회전 날개가 돌아가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이 서로 돌아야지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라고.
조종석에서 서로의 의도를 읽고, 실수를 잡아주고, 긴장 속에서도 웃을 수 있으려면, 이미 평소에 마음의 거리가 좁혀져 있어야 한다. 차 한 잔 마시면서 기장과 부기장이 농담 한두 마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라면, 사실 그날 비행의 안전은 이미 절반 이상 확보된 셈이나 다름없다.
나는 복직 후 자격 회복 비행을 앞두고, 처음 만난 어느 부기장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혹시 제가 나중에 실수하게 되면 바로 얘기해 줘요. 나 기장이라고 눈치 보지 말고.”
부기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실수하면 안 혼내주실 거죠?”
“그건... 그때 상황 봐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었다. (진심 80%쯤?)
우리는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인 조직에 살고 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다루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헬리콥터처럼 민감한 장비를 다루는 직종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위계는 있어도 벽은 없어야 한다. 소통은 그 벽을 허무는 유일한 도구이다. 오늘도 나는 비행 전, 먼저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잘 부탁해요!"
그 한마디에 조종간이 더 가볍고, 기류가 더 부드러워지는 걸 느낀다.
비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로터가 돌기 전, 말이 돌고, 마음이 돌기 시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