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무게를 견디는 사람

by 이기장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이 문장은 조종사의 삶과도 닮아 있다. 항공기 운항을 책임지는 기장은 비행 임무를 전달받은 순간부터 비행을 마치고 계류장을 걸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크고 작은 판단을 내린다. 함께 항공기에 탑승한 부기장과 승무원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에서부터, 경로 변경이나 임무 취소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까지, 기장에게는 막강한 권력과 그에 비례한 무한한 책임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자율성’이다.


다양한 연구들이 자율성의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자율성이 높은 직무일수록 구성원들은 일에 더 몰입하고, 더 만족하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한다. 조종사도 예외는 아니다. 기장은 수많은 순간의 선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하듯, 자율이라는 이름의 권한은 그것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왕관의 무게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기장으로 비행을 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에 단련돼 있었다. 하지만 2년간의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기장 자격은 상실되었고, 지금은 다시 자격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생의 위치에서 하나하나 과정을 밟고 있다.


스스로 조종간을 잡기 위한 이 과정은, 어쩌면 ‘자율성의 재건축’이라 할 수 있다. 공백기를 거친 몸과 마음에 다시 기본을 쌓고, 경험을 복원하며, 한 번 더 자율성을 품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물론 교육생의 위치는 익숙하지 않다.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매 순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위치는 기장 시절의 익숙했던 자율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율성의 결핍을 느끼고 있는 요즘, 나는 그것의 본질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곤 한다.


자율이란 결국, “내 마음대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판단을 내리는 것.” 그것은 경험과 실력, 신뢰와 인내가 어우러져야 가능한 상태이다. 자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교육 비행을 수행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되뇐다. 지금의 제한된 선택의 순간들이 쌓여 온전한 자율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자율은 결국 능력의 총합이며, 신뢰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자유롭게 하늘을 누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곧 다시 알게 될 것이다. 왕관의 무게를 견뎠기에, 다시 그것을 머리 위에 얹을 자격이 생겼다는 것을.



L20170421.99002133857i1.jpg 출처 : ˝승객 더 태우려다 출발 늦어˝...항공기 기장 `양심 고백`에 승객들 `박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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