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헬리콥터 기장의 넋두리

by 이기장


몇 년 전, A라는 후배와 비행을 했다. 비행 기량을 쌓기 위한 교육 비행이었다. 나는 기장으로, A는 부기장으로 조종석에 올랐다. 나는 비행 기량이 부족한 후배들을 나무라지 않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후배들이 비행을 준비하며, 혹은 비행을 하는 도중에 실수를 하더라도 혼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대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비행 기량이란 결국 시간이 해결하는 부분이 크고, 조금 앞서 경험했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목소리 높이는 꼴이 영 못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A후배도 아직 비행 경험이 많이 모자란 후배 중 한 명이였고, 손에 익지 않은 조종간을 쥐고 부지런히 기량을 쌓고자 노력하는 부기장이었다. 그날도 늘 그렇듯, A후배는 조종간을 흔들어대며 항공기를 위아래로, 좌 우로 꿀렁거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비행하는 내내 속이 미식미식거렸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잘 참아냈다. 정확히는 '참아냈다'라기보다, '그려려니...' 하는 마음으로 항공기 조종석에 몸과 마음 모두 내려놓고 초연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고나 할까?


약 2시간의 비행을 마무리할 무렵이었다. 헬리콥터의 휠이 활주로에 닿자마자, A후배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 뒤 조종간을 가져왔다. 타워에 교신을 마치고, 유도로를 향해 기수를 돌려 천천히 활주로를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기체가 급정지하듯 ‘턱’ 멈췄고, 몸이 앞으로 쏠리듯 튀어나갔다. 나도 모르게 “억!”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항공기에 이상이 생겼나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A후배가 페달브레이크 위에 발을 올려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다. A후배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앞으로 흘러가서... 막으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계류장에 들어간다는 교신을 마친 상태였고, 어떠한 장애물도, 위험요소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조종간은 기장인 내가 잡고 있었는데, 부기장이 사전에 어떠한 신호도 없이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싶었다.


시동을 끄고 항공기를 정리를 하면서 A후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리 지른 건 미안한데, 어찌 되었든 그 당시의 행동은 잘못된 거라고. A후배는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얼굴 표정은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육아휴직 중이던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른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던 상태였다. A후배에게서 온 전화가 울렸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는데, 회식이라도 하다가 내 생각이 나서 좋은 소식을 알리려는 것인가 싶었다. 전화를 받으니 역시나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A후배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선배님, 제가 그때 진짜 잘못한 겁니까?” ... ...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복직한 후 되도록이면 A후배와는 말을 섞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중이다. 내가 속이 좁은 탓일 수도 있다. 특별히 나쁜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냥... 뭔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아주 가끔씩, 그때를 떠올려보곤 한다.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일까?' 사람 속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YNECQIHLP44TQOD3N46TM74LWM.jpg?auth=edbde279c71e47b4c4b66bc1dd018038975aea707b2b468eb6f5e929a5934e0e&width=464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12/20071012012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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