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관찰 일기
조종사에게 경험은 곧 자산입니다. 비행시간이 많고, 경력이 오래된 선배 조종사들은 자연스럽게 조직 내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물론, 경험이 지위를 만들고, 지위가 존경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선배들이 항상 존경을 받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지요.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도 뛰어난 비행 지식과 기량을 지닌 선배 조종사가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가장 많은 비행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이 선배는 어떤 임무든 능숙하게 항로를 설정하고, 같은 조건에서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계획하고 수행할 줄 아는 진정한 ‘베테랑’입니다.
저 역시 비행 경력 10년 차지만, 그분과 함께 비행을 할 때면 매번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비상상황에서의 대처 요령, 같은 장비를 응용하여 조작하는 법, 작은 변수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하우까지, 정말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지요.
그런데, 이 훌륭한 선배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선배와 단둘이 있든, 여럿이 함께 있든, '대화'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선배의 ‘말’만 허공에 흩어지고 있을 뿐.
그 선배의 말문이 한번 열리면 기본 1시간은 우습고, 2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많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없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행에 대한 이야기,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 여행이야기, 운동, 음식, 기타 등등, 일단 시작되면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가끔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저 많은 말들은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하고요.
물론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선배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후배들은 슬며시 자리를 뜹니다. 피신할 타이밍을 놓쳤다 싶으면 서로 눈치를 보며, ‘오늘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조용한 전투가 벌어지곤 하지요.
사실 그 선배의 말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이야기 속에 정작 들어야 할 조언마저 묻혀버린다는 것입니다. 금바늘 하나를 찾기 위해 모래사장을 전체를 뒤지는 기분이랄까요. 그분이 입을 닫고 잠시만 들어준다면, 귀한 경험과 지혜가 더 또렷하게 후배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 그래서 저는 오늘도 그 선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척’하며 속으로 외칩니다.
“선배님...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