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 자격이다.

by 이기장


조종사는 보통의 직장인보다 까다로운 신체검사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조종사로서의 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동안 건강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받는 조종사 신체검사 역시, 절차상 거쳐야 하는 귀찮은 일쯤으로 여겼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신체검사를 받고 '재검' 판정을 받은 순간, 건강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건강을 잃는 순간 조종사로서의 삶도 끝인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조종사 신체검사를 받으면 2~3주 뒤 결과지가 메일로 전달됩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메일함을 확인하다가, '신체검사 결과 통보'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견했지요. 별다른 생각 없이 클릭을 하고, 첨부된 파일을 열었는데... 예상치 못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혈액검사 이상 소견. 추가 검사 요함.”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대로 조종간을 내려놓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는 어느 후배 조종사는 몇 달 전 신체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비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후배는 비행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비행을 하지 못하면서 심리적으로 무력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건강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재검 판정을 받는 순간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직 후 3개월간 자격 회복을 준비했고, 이제 곧 회복 평가를 앞두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무지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튿날 바로 추가 검사를 받았고, 재검사 결과를 통보받을 때까지 1주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별일 아닐 거야’ 하며 태연해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불안이 엄습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1주일 동안 감정의 널뛰기를 경험하며 고통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일주일 후, 다행히 재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자격 회복의 과정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건강과 일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좋아하고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 이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이 행복을 지켜가기 위해 다시 한번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역시! 건강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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