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의미를 담자.
저는 요즘도 가끔 ‘조종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조종사가 되기 전에는 두 곳의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요즘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고 하지만, 제가 일하던 시절만 해도 ‘초과근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그저 출근한 날(자정을 넘기기 전)에 퇴근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꾸었을 정도이니... 그때의 일상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야근이 많았던 것도 힘들었지만, 잦은 회식이 더 큰 부담이었습니다. 게다가 회식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일을 이어가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잠은 늘 부족했고, 술은 늘 과했죠. 몸도 마음도 늘 피곤에 지쳐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종사가 되고 나니 삶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직장 생활 내내 잠과 술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제는 그 두 가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조종사에게 잠은 곧 안전입니다. 피로는 안전 비행의 최대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직장에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라는 말을 흔히 주고받지만, 조종사 집단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꺼낸다면 소위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 겁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종사는 언제든 비행할 수 있도록 몸 상태를 관리해야 하기에, 잦은 술자리는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회식자리가 마련된다 해도 과음은 절대 금지입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술을 강권한다면, 그것은 상식 밖의 일로 여겨질 겁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애초에 회식 자리에 끼워주지도 않을 테지만요...)
물론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늘 건강을 챙겨야 하고,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기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며 작은 이상이라도 생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언제 출동 지시가 떨어질지 몰라 불안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완벽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크게 보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고뇌와 역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반드시 장점이 있고, 그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보람과 강점이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우주가 내게 의미를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우주에 의미를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는 알지 못하더라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우주적인 의미를 내 일에 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일과 삶을 견뎌내는 힘이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