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속에는 거절하는 것도, 거부당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나와 상대가 덜 불편할 수도 있는 듯하지만, 분명하게 “안 된다”, “못 한다”라고 말해야 할 순간에도 망설이는 바람에 종종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조종사도 종종 이런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심지어 곤란하다 못해 자신과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되는 상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 특히 기장은 규정이나 안전 기준에 어긋나는 상황이라면,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흑백처럼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비행이 불가능한 기상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 “착륙이 가능할 것 같지만, 확인되지 않는 위험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이륙 동력이 수치상 가능하지만, 여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경우” —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베테랑 기장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No!"라고 결정하기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상에서, 아주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그렇게 비행하면 안 되지” 혹은 “그 정도면 충분히 비행할 수 있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조종석에 앉아서, 조종간을 손에 쥔 채로,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갈등하는 현실 속에서는 입을 떼는 것조차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헬기 두 대가 함께 철원 평야를 가로지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륙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문제는 이륙로 후 진입해야 하는 산 골짜기에 구름이 ‘애매하게’ 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시계가 완전히 닫혀 있었다면, 혹은 반대로 맑았다면 오히려 판단은 쉬웠을 겁니다. 그러나 구름은 산 능선을 따라 얇게 흘렀고, 시야는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선두기 기장이었던 저는 후미기와 교신하며 일단 골짜기 쪽으로 기수를 향했습니다. 그때, 조종석 전면 윈드실드에 빗방울이 스치듯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한 기류가 느껴질 즈음, 무전기에서 후미기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RTB! 임무 취소!”
지금도 가끔 그때의 상황을 떠올립니다. 만약 그 골짜기로 그대로 진입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그리고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포기할 줄 아는 것’, ‘멈출 줄 아는 것’도 기장의 능력이라는 것.
우리는 흔히 ‘못한다’, ‘안 된다’라는 말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용기가 없거나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진짜 용기란, 무모하게 맞서는 것이 아니라, 돌아설 줄 아는 결단에 있다는 것을. 그때 후미기 기장이 보여준 ‘No’는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Yes”가 용기라고 믿지만, 때로는 “No”야말로 가장 큰 결심입니다. 포기할 줄 아는 것, 멈출 줄 아는 것, 그리고 돌아설 줄 아는 것. 그 단호함 속에서 진짜 용기가 자란다는 것을, 하늘은 언제나 조용히 가르쳐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