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었던 학창 시절, 처음으로 타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겠지만, 학교에서 수업 시간 시작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부리나케 교실로 뛰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선생님께 혼이 나는 것이 무서워서였겠지만, 수업 시간이 '약속'된 시간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본능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따금씩 이상한 부류의 선생님들이 종종 목격되곤 하였습니다. 바로 '내 시간은 귀하고, 너네들 시간은 모르겠다' 마인드의 선생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들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늦으면 호되게 야단을 치면서도,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꿋꿋이 'My way'를 외치며 수업을 이어가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를 매우 열정이 넘치는 '스승'으로 착각하면서 말이지요.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수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막판에야 진도를 맞추겠다고 분주히 분필 가루를 날리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요즘에는 분필도 없다면서요...?)
종이 울려도 수업을 멈추지 않고, “이 부분까지는 해야 한다고, 다른 반이랑 진도를 맞춰야 한다고, 나도 쉬고 싶은데 너희들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라고”하며 5분, 10분씩 학생들의 쉬는 시간을 빼앗던 선생님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50분의 수업 시간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단에 서 있다는 게 참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말이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만, 열의 넘쳤던 그 선생님들이 그저 시간 관리 능력이 부족했던 사람이었기를 바라봅니다.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성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은 받았던 제 과거가 무척이나 부끄러워지니까요.
조종사로서 비행을 하고 있는 지금도, 학창 시절 느꼈던 언짢음이 종종 또 다른 형태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비행의 세계에서 시간은 곧 ‘질서’이자 ‘안전’입니다. 조종사는 정해진 시간에 이륙한 뒤, 정해진 시간에 임무를 마쳐야 합니다. 하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역이 층층이 나뉘어 있고, 그 공역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고도는 분 단위로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비행시간에 맞춰 연료량을 계획하고, 임무에 필요한 인원과 화물의 이동 계획까지 세밀하게 맞물려 돌아갑니다. 그래서 보다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과정은 철저히 시간의 역순으로 계산됩니다. 최종 임무 시간을 기준으로 시동 시간을 정하고, 점검 시간을 배분하며, 계류장에서 사무실까지의 이동 시간을 헤아립니다. 단 5분의 오차도 전체 계획을 흔들 수 있기에, 조종사에게 시간은 곧 신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흐름을 깨뜨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 시간 계획이야 조금 틀어져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비행의 세계에서는 좋은 의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시간'입니다. 한 사람의 느슨함이 수많은 사람의 일정을 흔들고, 때로는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시간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비행하는 상황에 놓이다 보면, 저는 학창 시절 만났던 '열정 넘치는' 선생님들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시간은 귀하게 여기면서, 여러 학생들의 시간은 나 몰라라 하던 그 모습 말입니다. 자신은 학생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겠지만, 실상은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 지금이라도 깨달았을까요?
약속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타인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그 사람의 삶과 노력을 존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종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저는 오늘도 다짐합니다. 나의 시간뿐만 아니라, 타인의 시간 또한 귀하게 여기자고. 비행 계획표 위의 숫자들처럼, 누군가의 하루에도 정해진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요. 시간을 존중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