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본질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종사로 근무하며 느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야말로 본질을 가장 가까이에서 비춰주는 창(窓)이라는 사실입니다. 겉모습은 단순한 외양이 아니라, 신뢰의 징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행을 위해 계류장으로 향하기 전, 저는 늘 제 모습을 꼼꼼히 살핍니다. 머리카락 가르마가 단정한지, 조종복의 지퍼와 단추가 제대로 채워져 있는지, 조종화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흐트러진 차림으로 조종간을 잡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비행을 앞두고 외양을 신경 쓰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것이 임무를 대하는 자세를 드러내는 첫 번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정비사와 승무원, 그리고 동료 조종사가 마주하는 ‘나의 모습’은 결국 조종사로서의 전문성과 태도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임무 브리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목소리의 톤과 말의 속도까지 신경 씁니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거나 떨리면, 듣는 이로 하여금 임무 준비 상태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종사가 자신감 없는 표정과 말투로 임무를 설명한다면, 그를 향한 신뢰에도 작은 물음표가 생길 것입니다. 반대로, 차분한 말투와 단정한 태도는 그 자체로 ‘안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겉모습이 곧 신뢰로 이어지고, 신뢰는 곧 안전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질이 좋으면 언젠가 알아줄 거라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보이는 것’을 통해 판단합니다. 단정한 옷차림, 정돈된 언행, 책임감 있는 태도, 이런 겉모습들이 내면의 신뢰를 전달해 줍니다. 특히 조종사처럼 타인의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겉모습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직업윤리의 일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후배 조종사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실력을 보여주려 하지 말고, 신뢰를 보여줘라. 진짜 실력자는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여줄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다.”라고요. 겉으로 드러나는 단정함, 절제된 행동, 세심한 배려와 신중한 판단, 이 모든 것은 조종사의 본질을 말없이 증명하는 언어입니다.
누군가 “조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위기 속의 용기보다, 일상 속의 품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위기 상황은 드물지만, 일상은 매일 반복되니까요. 그리고 그 일상의 순간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신뢰받는 조종사로서 바로 서 있어야 하니까요.
본질은 겉모습으로 완성됩니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말의 톤을 조율하고, 행동을 정제하는 일은 단순히 외형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는 행위입니다. 저는 오늘도 조종복의 주름을 펴며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나의 단정한 일상이, 결국 나의 안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