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엔진 고장 상황
비행 중에는 언제든지 조종사를 긴장시키는 비상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비상상황 중 하나가 엔진이 고장 나거나 정지하는 상황이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엔진이 고장 나거나 정지할 경우, 헬리콥터는 회전 날개의 추진력을 잃게 된다. 추진력을 잃게 되면? 헬기는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조종사는 엔진정지 등의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주기적으로 훈련을 실시하지만, 훈련 상황과 실제 상황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 주의경고시스템에 의해 경고등이 점등되고 경고음이 울리게 된다. 그 즉시 조종사는 헬기에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할 수 있다. 나 역시 단순 센서 오작동으로 인해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경고음을 들어본 적이 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으로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였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헬기에 장착된 엔진의 성능이 곧 헬기가 발휘하는 힘의 크기를 의미한다. 엔진의 출력이 큰 헬기일수록 더 높은 중량을 싣고 비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장착된 엔진의 개수가 많을수록 출력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엔진 자체의 무게, 동력 전달 계통의 무게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엔진의 개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보통 소형 헬기의 경우 하나의 엔진만을 장착하며, 그 이상 급의 헬기에는 두 개의 엔진을 장착한다. 한 개의 엔진만 장착되는 헬기를 단발 엔진(Single Engine) 헬리콥터, 두 개의 엔진이 장착되는 헬기를 쌍발 엔진(Twin Engine) 헬리콥터라고 부른다.
그럼 '엔진이 하나만 탑재된 헬기는 무척 위험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맞다. 단발 엔진 헬기는 쌍발 엔진 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다. 조종사 입문 교육을 받을 당시, 비행학교에서 단발 엔진 헬기로 교육을 받았다. 뭣도 모를 때라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다시 단발 엔진 헬기를 타라고 하면 쉽사리 그리하겠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다행히 지금은 쌍발 엔진 헬기를 타고 있다 ㅎㅎ;).
엔진이 하나만 장착된 헬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는 엔진이 꺼질 것 같은 시늉? 만 보아도 바로 조종간을 조작하여 비상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고민하거나 주저할 시간이 없다. 잠시만 멈칫해도 생존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만약 고도가 낮거나, 속도가 느린 상황에서 엔진이 정지해 버리면, 비상절차를 시도조차 해보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단발 엔진 헬기 조종사들은 비행 중 늘 고도와 속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비행경로 중 비상착륙할 공간이 있는지 살피며 비행해야 한다.
쌍발 엔진 헬기 조종사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물론 여유가 '넘친다'가 아니라 여유가 조금 더 '있다'는 정도이다. 물론 쌍발 엔진 헬기 조종사도 엔진 정지 상황을 늘 고려하며 비행해야 한다. 다만 두 엔진이 동시에 정지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확률이 무척이나 희박하기 때문에 한 엔진 정지 상황을 조금 더 고려하는 편이다.
쌍발 엔진 헬기는 단발 엔진 헬기에 비해 고중량의 화물을 탑재하거나, 많은 인원을 탑승시키는 비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높은 출력을 요구하는 비행임무가 많다는 의미이다. 높은 출력을 요구하는 비행, 다시 말해 헬기의 이륙 중량이 무거울수록 조종사의 고민은 깊어진다. 고중량 상황에서 엔진 하나가 고장 나거나 정지되었을 때 적절한 대처 방안을 늘 염두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발 엔진 헬기 조종사는 늘 최대 가용 동력 대비 여유 동력, 엔진 마진(Engine Margin)을 고려해야 한다.
육아에 있어서도 늘 한 엔진 고장 상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엔진 고장 상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은 애당초 단발 엔진 육아 즉, 부모 한 명만 육아를 담당하는 것은 육아의 방법으로써 고려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육아할 아이가 한 명이면 부모 중 한 명만 있으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육아를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무지를 뽐내고 있는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단발 엔진 육아를 하다가 그 엔진에 이상이 생기면? 홀로 육아하는 이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거나 육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하 내용은 생략하겠다...
지금 쌍발 엔진 육아를 하고 있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한 엔진 고장 상황 또는 한 엔진 정지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분유값을 벌어야 아가가 맘마를 먹을 수 있을 테니까ㅠ). 한 엔진이 고장 나면, 정상 작동하는 엔진은 필요한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부하를 견뎌야 한다. 이는 곧 정상 엔진도 계속되는 부하 때문에 고장 나는 상황 즉, 모든 엔진이 정지하는 아찔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초보 엄마, 초보 아빠라도 부모가 함께하는 육아와 부모 중 한 명만 홀로 하는 육아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부모중 누군가는 홀로 집에서 육아로 고군분투해야 하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두 엔진을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상 작동하는 엔진이 고장 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육아'라는 비행의 목적지는 상당히 먼 곳에 있다. '한 엔진이 살아 있으니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육아라는 비행에 임한다면,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추락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장 난 엔진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정상 작동하지 않더라도 요구되는 동력의 양을 조금이라도 부담할 수 있으니까. 엔진을 아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막 출발지를 벗어났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보! 오늘 야근 없는 거 맞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