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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Sep 19. 2023

한 엔진 고장! 비상절차 준비!



  불과 얼마 전, 홀로 육아에 대한 글을 올렸다. 엔진 하나가 고장 난 헬리콥터의 비행을 '홀로 육아'에 빗대어 이야기했었는데, 실제 상황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비상상황이었다. EMERGENCY!!! (아! 물론 그 "실제"란 실전 육아에서 벌어진 일을 의미한다.)



  비행 중인 헬리콥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범답안은 이렇다.

1. 무엇보다 '침착함'을 유지한 상태에서, 

2. 동체의 진동과 소음 등 이상 유무가 무엇인지 살피고, 

3. 계기판의 각종 계기 상태를 확인한 뒤,

4. 승객 및 화물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5. 계속 비행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6. 계속 비행이 가능하다면 정비 행위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착륙장까지 비행하고,

7. 계속 비행이 불가능하다면 착륙이 가능한 지역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착륙한다.

 


  실제로 항공기의 이상을 알리는 경고등이 점등되고, 경고음이 울리면 과연 위의 1번 항목부터 7번 항목까지 '침착하게' 생각해 볼 겨를이 있을까? 이미 항공기의 이상을 인지한 상황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이 위급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역시나 '침착하게' 판단한 뒤, 불시착을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미군 헬기가 한강 인근에 불시착한 내용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에서는 '즉시 착륙해야 하는 상황', '가능한 한 신속히 착륙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심각한 고장이 아니어서 측각 착륙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으로 비상상황에 대한 조치가 구분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를 읽으며 미군 헬기 조종사가 처한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연신 깜빡이는 경고등, 귀를 찌를듯한 경고음, 어지럽게 춤추는 계기판 위의 붉은색 수치들, 조종석에 앉아 있는 조종사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조종석 창 밖을 주시하며 '착륙 가능한 장소가 있는지', '혹시나 그곳에 오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조종사들의 사투를 떠올려보았다.



  다친 이가 아무도 없어서 그저 다행이다 싶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조종사들에게 뒤늦게나마 경의를 표한다.





  미군 헬기가 맞닥뜨렸던 비상상황까지는 결코 아니었지만, 지난주 우리 가정에도 한바탕 소란이 일고 지나갔다. 육아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아빠 엔진'이 고장 난 것이다.  



  사실 '언제쯤 경고음이 울릴까?' 생각하고 있었다. 밤 11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정상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셋팅된 아빠 '엔진'인데, 육아를 시작하며 3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셋팅된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주말도, 휴일도 없이.



  다행히 우리 가정에는 아빠 엔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 엔진도 존재했다. 심지어 '엄마 엔진'은 다른 어떤 엔진보다 위대했다. 고장 난 아빠 엔진이 빌빌거리며 몸 져 누워 있을 때도 따뜻한 사랑으로, 친절하고 상냥한 마음으로 아가를 잘 돌보아주었으니 말이다. 



  몸이 고단하면 얼굴 표정이 굳게 되고, 상냥한 말이 쉬이 나오기 어렵다. 몸이 가뿐하고 건강해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엄마 엔진의 놀라운 출력을 보며, 엄마의 본능은 인간의 본능을 앞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빠 엔진이 점차 정상 상태로 회복됨에 따라, 엄마 엔진의 부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홀로 비상 상황을 견디고 버텨준 아내 엔진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고생한 엄마 엔진에게 조만간 기름칠 좀 해주어야겠다. 



미군 헬기 불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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