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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Sep 30. 2023

불이야! 불이야!


출처 : 육군 헬기 조종사들 닷새째 동해안 산불과 사투 - 아시아투데이 (asiatoday.co.kr)



  내가 조종사로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인원이나 화물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실어 나르는 임무에서부터, 큰 부피의 화물을 헬기 동체 하부에 매달아 옮기는 임무, 긴급하게 원거리 이동이 필요한 환자를 수송하는 임무, 공중에서 지상을 촬영하는 임무 등등을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임무가 있다. 수십 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부담스러운 임무... 그 임무는 바로 '산불진화' 임무이다.



  산불진화 임무를 생각하면 2022년 3월에 발생했던 "동해안 산불" 사건이 떠오른다. 경기 북부 지역을 담당하는 우리 본부 조종사들이 대거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으로 급파되었던 아주 긴박했던 사건이었다. 우리 본부 조종사들에게 영(嶺)을 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나 또한 그전까지 태백산맥을 건너 동해를 본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는 모든 조종사들이 동해안으로 총출동해야할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가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임무 지역의 특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지금 가면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심지어 잠잘 곳은 준비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강릉 비행장'으로 가야 한다는 지시만 전달받은 채, 침낭과 세면도구, 여벌옷 등이 담긴 가방 하나만 달랑 챙겨서 동해안을 향해 날아올랐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불은 곳곳에 산재되어 퍼져 있었고, 하늘에 떠 있는 헬기만 수십 대였다. 매캐한 연기가 기내로 새어 들어와 연거푸 기침을 해댔지만, 기침보다 더 큰 문제는 뿌연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 것이었다. 물을 뜰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고, 불이난 지점과 담수지를 오가는 수많은 헬기들은 그저 교신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주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가 뜨면 비행장 구석에서 대기를 했고, 출동을 하게 되면 연료가 소진될 때까지 산불 지점과 담수지를 수없이 오갔다. 연료를 보급하는 틈틈이 휴식을 취했지만, 하루 8시간이 넘는 비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종석에 8시간 동안 앉아만 있는 것도 고역인데, 연기와 불길, 공중에 떠있는 수많은 헬기들을 회피하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담수지 상공에 머물며 물을 퍼담는 조작을 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정신없이 불을 끄던 중, 함께 숙식을 하던 인원의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인해 즉시 임무를 중단하고 복귀를 해야만 했다. 제대로 된 쉼 없이 이어진 비행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든 상태였지만,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쓰리게 했던 순간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완연한 가을인가보다. 높고 파아란 하늘, 울긋불긋한 단풍잎, 시원하고 상쾌하게 부는 바람, 이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가을은 사계절 중 단연 으뜸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가을을 맞이하는 조종사들의 마음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전전긍긍하며 이 짧디짧은 가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이야기를 떠올리며 평정심을 찾아본다. 날이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날이 궂으면 그 또한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중요한 건 상황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 아닐까? 나를 다급하게 만드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일 뿐. 


  그러니 오늘도 고요한 마음으로 '안전비행'을 외쳐본다! 안. 전. 비. 행.



태백산맥 넘어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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