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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Oct 03. 2023

짙은 외로움



  시간은 때마다 다르게 흐른다. 평일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지만, 휴일의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는 것처럼. '휴가'라고 이름 붙여졌기 때문일까? 3개월이었던 아내의 출산 '휴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출산 휴가에서 休(휴), '쉰다'라는 의미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것 같다. 분명 아내는 하루도 온전히 쉰 적이 없는데, 회사라는 놈은 "이제 그만 쉬고 나오세요"라고 말한다.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3개월 동안 아기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수 있도록 연습했고, 동시에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집안일도 잘 해냈기 때문이다. 종종 아내가 외출로 집을 비울 때도 홀로 육아를 거뜬히 해내며 아내의 부재를 대비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어진 평온한 일상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하며, 아내가 출근하더라도 홀로 남겨진 시간을 알차게 쓰고자 나름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전설의 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안타깝게도 아내가 출근하기 전 품었던 높고 위대한 뜻은, 모두 '그럴싸한 계획'으로 판명이 나고야 말았다.



  우리 아기는 참 순한 편이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와 단둘이 한나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심 끝에 '외로움'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내가 출근하면 집은 무인도가 된다. (나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는 셈...) 작은 인형들을 대롱대롱 매달고 돌아가는 모빌, 그 모빌의 음악 소리가 거실 한 켠에서 잔잔히 울려펴지고, 이따금씩 아기는 옹알거리는 소리로 추임새를 놓는다. 하지만 이내 곧 아기가 잠들고 나면 적막만이 집 안을 가득 채우기 되고, 나는 이 고요함을 벗 삼아 따땃한 모닥불 같은 전등 아래에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마치 구조 신호를 보내는 조난자의 심정으로.



  내 구조 신호를 듣기라도 한 듯, 틈틈이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아가는 잘 있지?" 아! 생각해 보니 무인도에 조난 당한 이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아기 상태를 살펴본다. 아기는 아주 잘 자고 있다. 아기랑 같이 있는 아빠도 잘 있어보려 하지만, 아빠는 마음 편히 곤한 몸을 누일 수가 없다. 



  잘 자던 아기가 칭얼대면 공갈젖꼭지를 물려주며 좀 더 재워본다. 잠에서 깨면 분유를 먹인다. 분유를 먹이면 트림을 시켜준다. 트림을 시켜준 뒤 아가와 함께 노는 시간을 갖는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동물 그림도 보여준다. 시시때때로 더미 타임도 시켜준다. 



  어떻게 저떻게 한나절을 버티다 보면 드디어 구조대가 등장한다. 아내의 퇴근! 구조대는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미약한 두 생명체를 무인도에 두고 사라져버리겠지만, 일단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해 보려 한다. 



  아내가 퇴근했다는 말은, 나의 (육아)퇴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신나게 아기를 목욕시킨다. 목욕을 다 한 아기를 배불리 먹이고 재운다. 오늘 하루 끄읕...! 구조대와 함께 저녁식사로 회포를 풀어본다. 



  이윽고 다시 찾아온 고요함의 시간.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시간의 고요함은 밝은 대낮의 고요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마 '아내'의 존재 때문이겠지? 아기에게 엄마가 필요하듯, 아빠에게도 엄마가 필요한가보다. 



  홀로 육아를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홀로' 육아를 하고 있다는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한낮의 짙은 외로움을 채워줄 수 유일무이한 존재는, 남편·아내일 것이다. 구조대가 되어 무인도에 도착한다면, 신발도 벗기 전에, 손도 씻기 전에, 아기를 찾기 전에,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먼저 살펴주는 센스...를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잠깐이라도 다 내려놓고 쉬라고 말이다. 


  긴긴 외로움을 묵묵히 버텼을 그이에게, 내일 또다시 영겁의 시간을 견뎌야 할 그이에게.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치킨 한 마리 꼭 플리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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