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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Oct 10. 2023

남김없이 흘러가길


  우리 아가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100일. 지난 주말, 조촐한 100일 잔치를 치렀는데, 아가는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의 방문에도 한 번도 울지 않고 무려 1,2부에 걸친 행사를 잘 견뎌주었다(1부 친가 식구들, 2부 외가 식구들). 



  낮 동안 계속 긴장했는지, 아가는 저녁 목욕 후 마지막 분유를 먹고서는 이내 곯아떨어져 버렸다. '만세' 포즈로 자고 있는 아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새삼 '정말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100일이 지났지만, 다행히 나도 부모의 태가 조금씩 나는 것 같다. 아가를 안아 드는 자세도 처음보다 훨씬 안정적인 것 같고, 아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나 스스로의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무엇보다 더 이상 아가의 쉬야도, 응가도 두렵지 않다. (가끔 기저귀 쓰레기통을 비울 때는 두려운 마음이... x_x;;;)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다. 가는 말은 있으나 오는 말은 없는 이와의 사투, 그렇게 낮 시간 동안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이와 지지고 볶으며 시간을 보내다 밤을 맞이한다. 밤이 되면 아가는 천사가 되어 잠이 들고, 아빠는 시체가 되어 들어 눕는다. 



  고요한 밤, 어두운 방 천장에는 어김없이 아가의 맑고 투명한 눈이, 포동포동한 볼살이, 달짝지근한 아가향이 몽실몽실 떠오르고, 아침이 되면 다시 만날 아가 얼굴을 그리며 아빠는 스르르 잠에 든다. 나도 이렇게 서서히 부모가 되어가나 보다. 



  부모가 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부모님의 '그때'가 떠오른다. '30여 년 전의 엄마, 아빠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의 엄마, 아빠도 흐뭇한 미소로 나를 보아주셨겠지?', '그때의 엄마,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더 힘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순간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시에 철없었던 어린 시절, 부모님께 던졌던 모진 말들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찌릿찌릿하다.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이고, 때가 되면 잠을 자는 것이고, 때가 되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있었기에, 수고가 있었기에, 피와 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우리 아가가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혼자 컸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철없던 아들이 뒤늦게나마 부모님께 용서를 구해본다.



  아가의 100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부모님을 전보다 더 꼭 안아보았다. 아니, 오랜만에 부모님께 폭 안겨보았다. 우리 아가와 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이 느껴졌다. 30여 년 동안 받은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무럭무럭 자라 이렇게 아빠가 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받기만 한 사랑을 이제는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리사랑'이라는 말, 이제 아주 조금은 알 듯하다. 부모님께 받은 무한한 사랑, 나에게 한 줌도 남김없이 우리 아가에게 모두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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