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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Oct 14. 2023

What's your ETA ? ♬

출처 : 애플X뉴진스 콜라보…아이폰14 프로로 'ETA' 뮤비 찍었다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



  '설마 이 뜻이 그 뜻이라고?'

  얼마 전까지 *튜브나, TV 광고 영상으로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노래가 한창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며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여러 번 노래를 접하다 보니 어느 한 단어가 묘하게 귀에 거슬리는 게 아닌가? 



  '내가 들은 단어가 이게 맞나?' 싶어서 직접 찾아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단어가 맞았다. '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뜻으로 가사에 쓰인 것인가?'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내가 생각했던 그 뜻이 맞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내 귀에 꽂힌 단어는 바로 "ETA"였다. ETA는 "Estimated Time of Arrival"의 약자로 "선박, 차량, 항공기, 화물, 응급 서비스, 사람이 특정 장소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출처 : 위키백과)을 의미한다. 왜 이 단어가 내 귀에 꽂혔냐면, 실제 비행 임무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특정 영역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실제 영어권에서 "What's your ETA?"라고 말하고, '너 언제쯤 도착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 표현을 알기 전, 만약 누군가 나에게 '너 언제쯤 도착해?'를 영어로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하냐고 물었다면, 더듬더듬 거리며 "When... 아.. 음.... 글쎄 하핫;;?'이라고 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영어는 영원한 숙제... x_x;;;



  여객기를 비롯한 민간 항공 분야에서는 ETA를 많이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현업에서는 ETA보다는 "RTA"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자체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비행을 할 때는 보통 ETA를 사용하여 예상 도착 시간을 보고하거나 통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임무는 정확한 시간을 기준으로 여러 인원과 부서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조종사인 나 역시 주어진 시간을 준수하여 비행해야 한다.



  임무를 하게 되면 주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지점에 위치해야 하는데, 이 시간과 지점이 임무 요청서에 명시되어 조종사에게 전달된다. 즉, 해당 지점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바로 "RTA"인 것이다. RTA란 "Required Time of Arrival"의 약자로 '요구 도착 시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조종사는 바로 이 RTA에 맞게 비행 임무를 계획해야 하는 것이다.



  임무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여럿 있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연료 판단'다. 우선, 기지로부터 요청된 지점까지의 거리가 연료 보급 없이 비행이 가능한 거리인지, 불가능하다면 항로 중간에 연료 보급이 가능한 장소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구조적·환경적 변수를 고려하여 연료 소모율을 계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사람의 숫자나, 탑재하는 화물의 무게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헬리콥터는 무게에 따라 동력 사용량이 달라지는데, 이는 곧 연료 소모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비행하는 고도, 기온 등에 따라서도 연료 소모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임무 계획 단계에서 어떤 항로로, 어느 고도로 비행을 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임무 당일에 예상되는 기온을 확인하여 필요한 연료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럼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비행하는 데에 소모되는 연료를 계산하여 산출되는 연료량으로 임무를 계획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다. 



  임무 실시 전부터 지속적으로 항로 기상을 확인하겠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악기상을 대비하여 예비 연료를 준비해야 한다. 혹여나 항로 기상이 급격하게 나빠질 경우 해당 지역을 회피하여 보다 먼 거리를 비행해야 할 수도 있고, 목적지 기상이 호전될 때까지 착륙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악기상뿐만 아니라, 인원 및 물자의 탑재 시간이 지연되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임무 시간이 길어질 것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마친 뒤, 최종 임무 수행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Go"로 최종 결정을 내린 뒤 헬기가 이륙하게 되면, 비행하는 틈틈이 현재 비행 속도가 "RTA"에 맞출 수 있는 속도인지 지속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비행하는 속도가 다소 느린 것 같다면 증속을 해야 하고,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면 감속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야말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순간이다.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 뿐, 방심은 금물! 최종 목적지에 착륙하여, 승객실 문이 열릴 때까지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순간보다 더욱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착륙하는 순간이다. 착륙 장소를 눈으로 확인하고, 착륙해야 하는 패드 주변에 장애물이나 바람에 날릴만한 물건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본 뒤,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헬리콥터 회전날개가 일으키는 거센 바람에도 끝까지 조종간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헬기의 움직임을 통제해야 한다. 조금 더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사뿐히 지면 터치! 착륙 완료! "Door Open!"을 외치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헬리콥터 조종사의 일이 매력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판단하며 임무를 진행시킬 수 있고, 비행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산, 들, 그리고 발아래 펼쳐진 삶의 여러 모습들을 마주하는 엄청난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심지어 월급도 받으면서!ㅋ). 무엇보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 임무를 잘 마무리한 뒤 경험하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짜릿하다.  



  사실 현업에 있을 때는 나의 '일'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언제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고, 추울 때는 추운 곳에서, 더울 때는 더운 곳에서 일하느라 육체적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육아 휴직 덕분에 그동안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나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 시간 중 일부분이다.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시가 떠오른다. 삶 때문에, 일 때문에 혹은 사람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은 어떨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것'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그나저나 귓가에 계속 '왓츄이티에! 왓츄이티에!'가 맴도는데...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닌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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