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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Nov 04. 2023

참 스승을 만나다



  조종은 기술이다. 아무리 비행 원리에 대해 공부하고, 조종 이론을 열심히 이해한다 해도, 결국 몸으로 익히고 몸으로 써먹어야 하는 기술이다. 몸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은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조종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교관으로부터 조종을 배우는지, 어떻게 기술을 전수받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기술을 배울 때 한 번 습관을 잘못 들이면,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뒤늦게 잘못된 습관을 깨닫고 고치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잘못 배운 습관을 고치려면 그보다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이제 막 배우고자 하는 이가, 감히 입맛대로 스승을 고를 수는 없는 법.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배움이 없는 이가 어찌 배움이 깊은 이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저 내가 만난 스승이 좋은 스승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내가 비행을 처음 접했던 비행 학교에서도 각 교육생에게 임의로 조종교관을 배정하였는데, 나 역시 그저 하늘의 뜻에 따라 좋은 스승을 만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교관님은 여러 교관들 중에서도 비교적 나이가 지긋하신, 비행시간이나 임무 경험이 무척 많은 분이었다. 이따금씩 먼저 입교한 교육생들로부터 비행학교 생활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는데, 나에게 편성된 교관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고, 이미 수료한 거나 다름없다고, '축하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은 학창 시절에 이어 여기서도 계속되는 것인가 생각했다. 



  명성대로 내가 만나게 된 교관님은 정말 따뜻하신 분이었다. 처음으로 비행을 한 1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무척이나 긴장했지만, 교관님과 함께라면 끝까지 잘 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비행을 마치고 다시 만난 동기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그늘이 가득했다. 처음이라 나만큼 긴장을 많이 했나 싶었지만, 교육 과정이 거듭될수록 동기들 얼굴에 내려앉은 그늘이 점점 짙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비행은 한 명의 담당 교관으로부터 꾸준히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를 담당하시는 교관님께서는 여러 교관들 중에서도 비행 기량이 가장 뛰어나신 분이었기 때문에, 여러 교육 과정에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나의 비행 교육 시간에 다른 교관이 소위 말해 '땜빵'으로 투입되는 경우가 더러 생길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땜빵' 교관과 비행을 하게 되었는데, 왜 비행만 다녀오면 동기들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지는지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땜빵 교관과의 비행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난데없이 교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인마 너 왜 자꾸 조종간을 흔드는 거야!! 가만히 두라고 인마!!", "어 이짜식 계속 이러네??", "너 왜 조종간을 이따위로 잡는 거야!!",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야?? 이 xx 완전 엉망이구만?", "조종간도 제대로 못 쥐니까 이 모양 아니야!!" 나에게 마땅한 대답할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교관의 지적은 계속됐다.



  참다못한 나는 교관을 향해 대들듯이 말했다. "저는 제 담당 교관님께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러자 교관은 "뭐? 너 내가 확인해 본다? 확인해 볼 거야? 알겠어? 이 자식이!". 그 후 교육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아주 불쾌하고 불편했던 감정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는 기억 말고는.



  다음날 내 담당 교관님께서 나를 교관 사무실로 조용히 부르셨다. 큰 일 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교관님께서는 아주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시고, 따뜻한 차를 내어주시며 말씀하셨다. "허허허. 어제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심정일지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조종사마다 조종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교관마다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배우는 입장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잘 걸러서 내 실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요? 호호호"



  그날 이후 기장이 되기까지, 항상 교관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조종석에 올랐다. 

-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부기장과 승무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기장과 비행을 할 때도,

- 뭐가 그리 급한지 항상 서두르며 규정과 절차를 가벼이 여기는 기장과 비행을 할 때도, 

- 기량이 부족한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후배 조종사들을 늘 못마땅해하며, 함께 비행할 때마다 타박하고 야단치려 드는 기장과 비행을 할 때도, 

언제나 교관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며 누구와 어떤 비행을 하든 훌륭한 조종사가 되기 위한 성장의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기장이 된 후로는 부기장으로서 비행하던 때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조종석에 오를 수 있었다. 혹시 내가 조종사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을 보이지는 않는지, 혹여나 나의 행동이 후배 조종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지, 별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함께 비행하는 동료 조종사, 승무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늘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조종사는 비행시간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한다. 결국 오랜 시간 비행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아야 뛰어난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비행을 오래 했다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훌륭한 조종사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많은 비행 경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동료들이 함께 비행하기를 꺼리는 조종사라면 한 인간으로서 됨됨이가 부족한 사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조종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늘 돌아보려고 노력한다. 함께 비행하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안전하게 임무를 마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던 교관님은 아직도 현업에서 일하고 계시다.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 인정을 받으시면서.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도, 작은 사고도 없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교관님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교관이 되어 후배 조종사를 양성하게 될 텐데, 과연 교관님만큼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과 고민이 가득하다.



  언젠가 우연히 교관님이 계신 기지의 공역을 지나던 길에, 교관님의 교신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전파를 통해 전해지는 교관님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관제망을 통해 교관님을 불러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나마 크게 외쳐보았다. 


  "Thank you 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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