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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Nov 07. 2023

주사 뿅뿅! (20)


  나는 어려서부터 차를 무척 좋아했다. 자동차 이름을 줄줄 외웠고, 장난감도 늘 자동차만 찾았다. 아버지 차를 타고 외출하는 날이면, 차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항상 뒷열 가운데 자리을 차지하고 앉아서, 몸을 한껏 앞으로 들이밀고 아버지가 운전하는 모습을 재미나게 구경하곤 했다.



  차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초등학생일 무렵 장래희망은 늘 운전기사였다. 트럭 운전기사, 버스 운전기사, 택시 운전기사를 바꾸어 가면서 말이다.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나이 때부터 자동차 바퀴만 봐도 차 이름을 단 번에 알아맞혔다고 한다. 그 정도로 차에 참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직업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토록 좋아하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도 직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때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을 구분했을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을 포함하여 하고 싶은 일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정확히 세 손가락에 꼽았던 것을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세 가지 직업 중 하나가 바로 '의사'였다.    



  왜 의사가 되기 싫었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병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안 좋은 감정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병에 걸리는 걸 예방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인데, 어린 나이에 그리 깊은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병원은 아픔을 주는 곳', '기분 나쁜 일이 생기는 곳'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의사 선생님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긴장되는 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혹여나 몸 어딘가가 불편해지면, 마음도 영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병원 문을 열고 발을 들이밀기 전부터 코 끝을 싸하게 만드는 알코올 냄새. 그 냄새는 지금도 머리털을 삐쭉삐쭉 서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병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싸이코...가 된 것은 아니고, 아마 우리 아가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아가는 아직 병원이 어떤 곳인지 모를 것이다. 알코올 냄새가 가득한 수술실에서 태어났으니 아직은 병원 냄새가 친숙하려나? 지난주, 아가의 4개월 예방 접종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1개월 접종, 2개월 접종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주사를 맞게 되었다. 접종열이 오를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이른 오전에 접종을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9시 땡! 하자마자 주사를 맞힐 계획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아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병원 이곳저곳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곧 닥쳐올 미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우리 아가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는데, 다 우리 아가 보다 한참은 큰 아이들 같아 보였다. 무시무시한 병원에 왔는데도 의젓하게 앉아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니, 나만 병원을 무서워하는 아이였나 싶어서 머쓱했다. 



  '라떼'만 해도, '주사 하나도 안 아파', '돈가스 먹으러 가는 거야' 등등의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동원해야만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 놓을 수 있었고, 울고 불고 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주사를 맞혔던 것 같은데, 세상이 많이 달라진 만큼 아이들도 많이 달라진 건가 싶었다.



  아내도 출근을 조금 늦추고 아가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였다. 아내는 아가의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아가의 귀에 대고 연신 속삭이듯 말했다. 병원에 왜 왔는지,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사를 맞으면 많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잠깐 아프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아가가 과연 알아들었을까? 글쎄, 아가는 그저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줄로만 알고 '헤헤'거리면서 경청했으리라. 아빠는 그저 옆에서 홀로 근심, 걱정, 초조, 불안 등등을 느끼며 땀나는 손바닥을 비벼대고 있었다.



  'ㅇㅇㅇ 아기~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이전에 병원에 왔을 때는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쪼꼬미였는데, 지금은 엄마 품 안에서 씩씩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게 된 우리 아가! 엄마 배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얌전히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그 장면을 보니 어찌나 귀엽던지. '이제 곧 주사를 맞고 뿌애애애앵- 하며 울 텐데, 너무 많이 아프면 어쩌나, 그래도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겠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접종 전, 의사 선생님이 아가의 가슴에 청진기도 대보고, 입을 벌려 입 안도 들여다보며 아가 몸 여기저기를 세심히 살펴주었다. 아가는 그 손길이 영 어색했는지 아랫입술을 삐죽거리는 게, '난 지금 울고 싶지만 꾹 참을 거야! 힝...'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귀여운 녀석! 



  이제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순간!!! 간호사 선생님께서 스테인리스 트레이에 두 개의 주사기와, 한 개의 물약을 담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에게 아가가 움직이지 않게 잘 잡아 달라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아가의 한쪽 허벅지 살을 두툼하게 잡고는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데, "윽...!" 괜히 내 허벅지가 찌릿한 느낌이었다. 바늘이 들어가기 무섭게 아가는 '뿌애애앵!!' 울었다. 다른 허벅지에도 한 방 더! '우애애앵!!' 다행히 물약이 맛있었는지, 입을 '냠냠 거리며' 울음을 그치는 우리 아가. 



  접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혹시나 열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아내는 출근하고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열이 나면 재빨리 아가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향할 요량이었다. 다행히 아가는 지난 두 번의 접종 때처럼 열도 나지 않았고, 별 찡얼거림 없이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 우리 아가 참 씩씩하고 의젓하다!



  의젓한 아가 덕분에 이제 아빠는 병원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아빠는 아가 덕분에 병원 문턱이 한껏 낮아진 것 같은데, 우리 아가는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려나 궁금하다. 혹시 아빠를 겁쟁이라고 놀리는 건 아닌지? 



  우리 아가는 아빠처럼 병원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원 안에 가득한 싸한 알코올 냄새를 시원하고 상큼한 레몬향처럼 느낄... 수는 없겠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아프면 어느 때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며 자랐으면 좋겠다. 물론, 병원 갈 일 없이 크는 게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4개월 아가의 미션 하나 클리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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