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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Oct 31. 2023

여행을 떠나요 (18)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2810


  많은 이들이 여행을 참 좋아한다.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설렘' 때문일 것이다. 매일 똑같은 장소를 오가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부대끼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좀처럼 설렘을 느낄 수 없다. 결국,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행을 통해 '낯섦'을 느끼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낯섬을 통해 설렘을 느끼는 시간'이라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육아를 잘 견디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때문에 여행을 동경하는 이도 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행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여행을 다녀왔다. 집에서 아가를 돌보는 사람이 여행을 가면, 그럼 소는 누가 키... 아니 애는 누가 키운다는 말인가!?



  내가 다녀온 여행지가 어디냐면! 그곳은 바로바로! '도서관'다. 엥??? 무척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분명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아주 스펙타클함?도 맛볼 수 있었다.



  나의 유일한 사치는 '도서관 책 쇼핑'이다. 몇 주 전에도 어김없이 '사치스러운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했었다. 도서관은 3주에 한 번씩 방문하는데, 책을 빌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전에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다. 제때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대출이 제한되고, 그렇게 되면 나의 몇 안 되는 낙중 하나인 '책 쇼핑'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도서관 방문 날짜만큼은 사수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아내가 출장 때문에 귀가가 늦어질 수 있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도서관은 차로 10분 넘게 가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가는 길이 꽤나 번거롭다. 방문할 일이 있을 때 반납과 대출을 한 번에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이유이다. 



  도서관 운영시간은 22시까지인데 아내가 그 시간 안에 귀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출 만기일이라 꼭 반납을 해야 했고, 운영시간이 넘어서 가게 될 경우 무인 반납기를 통해 반납만 하고 돌아온 뒤, 다시 책을 빌리러 가는 수고를 겪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한 번 해보자고! 



  아가랑 외출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가랑 단둘이 외출하는 것은!, 더욱이 아가를 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것은!!, 무엇보다 아가를 데리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은!!! 내 인생에 처음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낯선 경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문득, '이것이 여행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설레어 왔다. 그래 해보자! 여행을 떠나보자! 



  순간적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 예상 동선을 그려보고, 필요한 준비물을 챙긴 뒤, 소파에 정좌를 하고 앉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았다. 집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아가를 차에 태우고, 도서관에 도착하여 아기를 아기 띠에 메고, 도서관 서고에서 책을 찾고, 다시 차에 태운 뒤, 유유히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순간을 말이다. 



  드디어 출발!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계획한대로 후다닥 움직였다. 순식간에 책 쇼핑을 마치고, 낑낑거리며 카시트에 아가를 태운 뒤, 운전석에 몸을 축 늘어뜨린 그 순간,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래!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선물은 바로! M드라이브 아이스 아메리카노! (+쿠폰 할인까지 받는 센스) 



  여행 중 겪었던 당황스러웠던 시간들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터 즐거운 추억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던가? 짧디짧은 여행이었지만, 당황했던 순간순간이 벌써부터 소중하게 느껴진다. 



  도서관에 도착했으나 주차할 공간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순간, 아기 띠 할 생각만 했지 무거운 책 가방을 둘러멜 생각을 미쳐 하지 못해서 낑낑거렸던 순간(반납할 책이 8권...), 자료실에 공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혹여나 아가가 징징거리지 않을까 마음 졸였던 순간(그것도 무척이나 고요하게... 적막하게... 쥐 죽은 듯이...)까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식은땀이 주르륵 흐를 것 같다. 


 

  물론,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순간도 여럿 있었다. 아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주었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친절함, 서고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보던 호기심 가득한 아가의 눈망울, 특히 도서관을 향하는 차 안에서 아가에게 도서관에 대해 재잘거리며 이야기해 주었던 순간까지. 짧았던 여행이었지만 아주 보람차고 의미있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물론 아가는 기억할 리 없겠지만...ㅎㅎ;;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이번 여행에서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하지만 이 아쉬움조차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참 유익하고 즐거운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결국 아가가 뿌애애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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