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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Oct 28. 2023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출처 : 강화소방서, 마니산 산악사고 구조대싱자 헬기 구조:FPN Daily (fpn119.co.kr)



  "조종사"라는 직업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누비는 모습'을 상상하는 이들이 많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종사의 모습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조종사라고 해서 모두 다 똑같은 하늘을 누비는 것은 아니다. '기구, 비행선, 글라이더, 비행기, 헬리콥터' 등등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든 것들을 '항공기'라 칭하는데, 각 항공기는 그 특성에 따라 비행하는 속도와 고도가 상이하다. 따라서 어떤 항공기의 조종사냐에 따라 서로 다른 하늘을 누비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공항에서 쉽게 마주치는 비행기 조종사와 어디 숨어 지내는지 도통 모르겠는 헬리콥터 조종사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담아볼까 한다.



  먼저 비행기 조종사를 떠올려보자. 우리를 여행지로 데려다주는 비행기 조종사는 반드시 활주로가 있는 공항에 가야만 만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비행기는 반드시 공항, 활주로와 같은 이·착륙 시설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보면 비행기 조종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문드문 존재하는 나들목만을 통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아무리 근사한 곳을 지나친다 하더라도 결코 곁길로 샐 수 없다는 점에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는 일단 비행을 시작하면 비행이 끝날 때까지 한자리에 멈추어 설 수 없다. 비행기에는 '최저 속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이는 양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최소한 어느 정도 이상의 속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만약 최저 속도 이하로 속도가 줄면 양력을 잃고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행기 조종사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행기 조종사가 다니는 길, 비행 고도는 어떨까? 비행기는 상대적으로 고고도로 비행한다. 비행기의 순항고도는 에베레스트산 높이 이상으로 무척이나 높은 고도에 이른다.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이유는 연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도 있고, 기상(날씨)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비행기가 이렇게 높은 고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비행기 조종사는 지표면을 관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행기 조종사는 조종석 계기판의 여러 정보를 참고하며 비행하는 'IFR(계기비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행기 아래로 구름 층이 짙게 깔리기라도 하면, 비행기 조종사는 더더욱 지표면의 세상으로부터 멀어짐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비행기 조종사는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의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헬리콥터 조종사의 비행은 어떤 모습일까? 



  헬리콥터는 공항, 활주로 등과 같은 이·착륙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표면이 흙이든, 아스팔트이든, 모래든, 뻘이든 상관없이 어디든 갈 수 있고 이·착륙할 수 있다. (물론 지표면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냐에 따라 비행 안전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 산꼭대기가 목적지라 하더라도 헬리콥터 조종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서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하는 모습을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에 비유했는데, 헬리콥터 조종사는 오솔길을 걷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든 원하는 곳을 만나면 잠시 멈추어 설 수 있고, 멈추어 선 그곳을 목적지로 삼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비행기 조종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무척 빠른 속도로 말이다. 반면에 헬리콥터 조종사는 비행기에 비하면 아주 느림보 거북이 수준으로 이동한다. 심지어 제자리에 멈추어 서서 오래도록 머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면, 헬리콥터에는 최저 속도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속도가 없는 상태에서도 비행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제자리비행(Hovering)',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다른 항공기와 달리, 헬리콥터만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헬리콥터에는 최고 속도라는 개념이 적용된다. 이 속도를 넘어가는 비행을 하게 되면 양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동체에 무리를 주게 되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결코 비행기만큼 빠를 수 없는 것이 헬리콥터의 숙명인 것이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다니는 고도는 어떠할까? 헬리콥터는 비행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로 비행한다. 임무 성격에 따라 고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찌 되었든 헬리콥터는 지표면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비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 비행기가 IFR(계기비행) 비행을 한다고 했는데, 헬리콥터는 눈으로 보는 비행, VFR(시계비행) 비행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 항공기의 비행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행기는 구름을 아래에 두고도, 혹은 구름 속에서도 비행이 가능하지만, 헬리콥터는 규정상 구름보다 항상 낮은 높이로 비행해야 한다. 구름층이 너무 낮은 날에는 비행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 점 때문에 비행기에 비해 헬리콥터가 더 많은 제약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 점이 헬리콥터 조종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행기는 일단 구름 위로 올라가면 무한히 뻗어 있는 하늘'만' 볼 수 있다. 이따금씩 맑은 날에는 멀리서나마 푸른 바다를, 초록빛 산과 들을 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헬리콥터 조종사는 사시사철, 매일매일 펼쳐지는 지표면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봄에는 퀘퀘한 황사 먼지 덕분에? 누렇고 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빌딩 숲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푸릇푸릇한 산과 들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가을은 또 어떠한가? 산마다 울긋불긋 피어있는 단풍뿐만 아니라, 그 단풍을 보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등산객들에게도 손인사를 건넬 수 있다. 겨울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새하얀 설산, 화이트 카펫이 깔린 도시며 농촌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이 모든 풍경들이 구름 아래를 누비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아닐까?



  너무 두서없이 장황한 이야기였다. 어찌 되었든! 이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다소 대중성이 떨어지는 헬리콥터 조종사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작은 기회가 되었기를 소망해 본다. 



  푸른 창공을 머리에 이고, 반짝이는 우리네 삶을 바라보는 행운을 가진 이.

  저는 헬리콥터 조종사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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