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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Nov 18. 2023

수능은 끝나지만, 인생은 계속된다.



  아가의 분유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끼 분량밖에 남지 않은 듯했다.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다 아빠의 잘못이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마트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무심코 켜둔 라디오에서는 지금쯤 수능 국어 시험이 진행 중일 거라며 한창 시험에 집중하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수험생이었던 10여 년 전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꼭 한 번 이상 꾼다는 악몽이 있다. 바로 '재입대'하는 꿈!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아직까지 재입대하는 꿈을 꾼 적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꾸는 악몽이 있다. 바로 '수능을 다시 보는 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악몽은 어느 고요한 밤중에 쥐도새도 모르게 불쑥 찾아온다.



  사실 나는 수능을 전혀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수능을 보기 한 달여 전에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합격한 곳 중 한 곳은 수능 최저 등급과 상관없이 최종 합격을 받아둔 상태였다. 고득점을 올릴 필요도 없이 그저 두 과목만 2등급 이상의 성적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수능이 다가올수록 여전히 불안하고 무서웠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안절부절못하게 했던 것일까.



  내가 재학 중이었던 고등학교도 고사장 중 한 곳으로 지정되었는데, 우연히도 나는 모교로 배치되어 수능을 치르게 되었다.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익숙한 장소에서 치른다는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다. 수험표를 받아든 뒤 시험을 치르게 될 아래층 교실에 잠깐 들러 상태가 좋은 책상과 의자를 골라놓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굳이 시간을 할애하여 지정된 수능 고사장을 답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수험생보다 분명히 좋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능 당일 아침이 밝았다. 밤새 뒤척이다 보니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보통의 날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씻고 밥을 먹은 뒤, 평소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모교에서 시험을 치러서 그런지, 수능을 보러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교문 앞에 다다라서, 북치고 장구치며 왁자지껄하게 수험생을 응원하고 있는 무리들을 마주했다. 그제야 오늘이 진짜 '그날'이구나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험 시간은 긴장할 틈도 주지 않고 빠르게 흘러갔다. 언어영역, 수리영역, 이어서 외국어영역, 사회탐구영역을 마친 뒤 제2외국어 영역을 끝으로 수능이라는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교문 앞에는 수험생들의 가족, 친지, 지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시험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매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이벤트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당사자가 되어 이벤트를 겪고 나니 후련함보다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 어떤 고난이나 역경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하던데, 수능도 역시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 다만, 그에 대한 결과는 수험생마다 '별 거일 수도', '별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수능을 주관하는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수능의 성격과 목적이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영 와닿지가 않는다. 수능이라는 제도는 단지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이려는 여러 노력과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수능의 영향과 의미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말 다른 대안의 등장은 요원한 일인가.




  인공지능을 비롯한 최첨단의 기술이 등장하는 시대에, 객관식 문제를 얼마나 많이 맞췄는 지로 수학 능력 수준을 판단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다. 그리고 어떻게 감히 12년의 수학 기간을, 아닌 20년의 시간동안 갈고닦은 개개인의 능력을, 단 하루, 단 한 번으로 측정으로 가름하려고 하는 것인지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쩌면 '단 하루', '단 한 번'이 주는 심리적인 불편함과 부담감이 오랜 시간동안 나의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과 불안함을 쌓아 올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여전히 수능을 대하는 나의 무의식은 이따금씩 악몽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수능에 대한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마트 주차장에 도착했고, 서둘러 분유 한 통을 계산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놓인 분유통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수능이 이제 우리 아가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 아가도 언제 가는 학교를 가고, 시험을 보고, 평가를 받고,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 텐데, 그때의 교육과 평가는 지금과는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적어도 우리 아가가 성인의 문턱을 넘는 그 시기에는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메시지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교육 방법과 평가 수단이 발견되고 개발되어서, '단 하루', '단 한 번', '많은 정답 개수'가 아닌 것들로 아이들의 미래가 판단되고 평가되기를 소망해 본다. '빠르게 잘 달린 학생들은 칭찬해!', '그렇지 않은 놈들은 빠져라!'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인생이란 달리기, 마라톤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아가는 그 의미를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가의 많은 친구들도 그 여행에 동참하기를 희망해 본다.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수능은 끝나지만, 인생은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계속 진행 중임을 잊지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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