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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Nov 25. 2023

학교가는 길


  평일 아침 8시에서 8시 30분 사이, 아가의 첫 수유를 마친 뒤 빨래 건조대에서 아가의 빨래를 걷을 때쯤이면 아파트 단지 길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가는 어린아이부터, 자전거를 타고 쌩~ 하니 달려가는 아이, 여기 두리번 저기 두리번 하며 탐험하듯 등굣길을 누비는 아이, 그리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거리며 무리 지어 등교하는 아이들까지.



  그렇게 몇번이고 무심코 아이들의 등굣길을 지켜보다가, 문득 '라떼의' 초등학교 등굣길이 떠올랐다. 골목골목을 지나 큰 길을 건너, 시장 옆을 끼고 난 굽은 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학교 정문에 다다르곤 했던 그 등굣길을 말이다.



  사실 학교로 향하는 길은 요리조리로 참 많이 나있었다. 집 앞 육교를 건너서 최단 경로로 갈 수도 있었고, 횡단보도를 건너 시장 안에 나있는 작은 골목길을 통해 조금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교문을 통과하여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마냥 여유를 부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등굣길보다는 하굣길을 더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하굣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가 있었다. 문방구 탐방! 특별히 살 게 없더라도 꼭 한 번씩 들려야 하는 그곳! 참새의 방앗간 같은 그곳 말이다. 쫀드기, 아폴로, 구운 쥐포, 슬러시 그리고 매달 뽑기 기계 등등을 비롯해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던 아이들만을 위한 종합 쇼핑몰! 



  지금 생각해 보면 문방구에 왜 먹을 게 그리 많았는지 의문이다. 군것질 거리를 생각하면 문방구 옆 분식집을 빼먹을 수 없다. 단 돈 100원이면 매콤달콤한 빨간 양념이 잔뜩 묻은 떡꼬치를 먹으며 행복을 살 수 있었는데...



  하굣길에는 늘 친구가 곁에 있었다. 친구랑 문방구와 분식집을 들른 후에 슬러시든, 뽑기 과자든, 떡꼬치든, 컵떡볶이든 일단 뭐라도 손에 들고서 집으로 향하곤 했다. 어떤 날은 좌판이 어지럽게 깔린 시장 골목길로, 또 어떤 날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슝슝 지나다니는 시장 옆 작은 도로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육교를 건너는 길이었지만, 친구와 걷다 보면 늘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을 택하기 마련이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친구네 집에 들러 친구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간식을 얻어먹곤 하였다. 시험? 숙제? 학원? 글쎄... 그런 걸 신경 썼던 기억이 전혀 없다. @_@;;



  학교를 오가는 길은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월, 화, 수, 목, 금 + 토요일까지 무려 6년 동안 이어졌는데, 한 번도 지루하다고 느낀 기억이 없다. 아마 어린아이에게는 등, 하굣길에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여행과도 같았었나 보다. 지금 막 네이버 지도를 통해 검색해 보니 600m 남짓이다. 그토록 짧은 길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 길이 늘 그렇게 흥미진진했을까?



  거실 창 너머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인다. 아파트 단지 내 지상으로는 차량이 이동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초록빛 잔디와 푸르른 나무들이 쭈욱 펼쳐져 있어 아이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마음도 참 편안하게 해주는 듯하다. 



  학교에 이르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야 하지만, 그마저도 멀리서부터 어린이보호 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씽씽 쌩쌩 달리는 차도 하나 없고, 등하굣길 횡단보도마다 아이들의 안전을 보호해 주는 우리 때의 녹색어머니회 같은 어른들이 계셔서 무척이나 안심이 된다. (우리 때는 "녹색어머니회"였는데 지금은 무어라 칭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이 등하굣길이 무언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문방구도 없고, 분식집도 없고, 오락실도 없고, 골목길도 없고, 재미있는 볼거리도 하나 없는 이 등하굣길이 참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이 집에 산다면 우리 아가도 길 건너에 있는 저 초등학교를 오갈 텐데,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이 짧은 순간에 우리 아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어떤 것을 맛볼 수 있을까? ('요즘처럼 위험하고 불안한 세상 살면서 참 배부른 소리 한다, 천하태평하다!'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하다.)



  빨래를 다 걷고 건조대를 접으며 등굣길 구경을 마치려던 순간, 허겁지겁 뛰어가는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각인가 보다. 뛰다가 넘어지면 아플 텐데! 문득 "학교에서 집 가까운 순서대로 지각한다"라는 말이 생각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 아가도 엄마 닮아서 지각을 하...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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