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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Nov 28. 2023

아빠의 다짐 (23)

  



  아가의 영유아 검진을 위해 병원을 가야 하는 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병원을 가야 하는 순간이면 여전히 긴장이 된다. 아가의 검진을 위해 예약된 시간은 11시 30분.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1시 1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기 때문에, 두 번째 맘마를 그전까지 다 먹일 계획이었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 긴장감에 분주함까지 더해갔다. 하지만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 뿐... 



  극 파워 'J' 성향인 아빠는 뭐든 계획한 대로, 예상한 대로, 준비한 대로 일이 진행되어야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처럼 되어 주던가. 못난 성격 탓에, 육아 생활 초반만 해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내가 계획하고 예상하고 준비한 대로 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내려놓았다. 조금씩 도를 깨우쳐가고 있는 것인가...?



  병원을 가는 그날도 역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가는 그동안 뜸하던 옹알이를 해대느라 맘마를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동시에 아빠의 평정심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맘마를 먹다 말고 응가를 했다. 하지만 도에 이르고 있는 아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재빨리 아가의 응가를 치우고 엉덩이를 씻긴 뒤 다시 기저귀 장착!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젖병 가득 남은 분유를 버리며 쓰린 속을 달랠 새도 없이, 아가를 안아 올려 트림을 시키는 동시에, 외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아내는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집을 나선 상태였고, 회사 업무 중에 잠시 병원에 들르기로 했다. 오고 가는 길이 귀찮을 법도 한데, 아내는 기어코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아내는 '직장인'의 일도, '엄마'의 일도 소홀히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대단쓰...!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병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저귀 가방을 둘러메고 유모차를 밀며 힘찬 걸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홀로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는데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어엿한 주 양육자로서 이리 자신감이 없어서야!'라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의사 선생님의 검진 전, 아가의 머리둘레와 신장, 체중을 측정했다. 아가가 갓 태어났을 때보다 정말 많이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직접 수치를 눈으로 접하니 아가의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에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아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해맑게 입을 벌리며 웃어댔다.  



  아가는 아빠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아니다. 아가는 여기저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을 탐색했고, 아빠만 열심히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검진'이라고 해서 무척 떨렸는데, 막상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아를 먼저 경험한 선배 아빠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본인을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라고 소개하며, 영아 돌연사 예방 방법에 대해, 좋은 수면 습관에 대해, 바람직한 미디어 노출 시기에 대해, 그리고 권장되는 카시트 사용 방법 등등에 대해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육아하는 아빠가 짠하게 느껴지셨나? 하핫.



  때마침 아내가 뒤늦게 진료실로 들어왔다. 아가는 엄마를 만난 반가움에 들떴는지, 다시 한번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진료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후 아가는 의사 선생님의 손길 아래 모든 검사를 마쳤고, '참 순한 아가'라는 판정?과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아빠는 여전히 세상에 무섭고 떨리는 일이 가득하다고 생각하지만, 아가는 아직까지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을 그저 신나고 즐거운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아가를 바라보며, '낯설고 어색한 일에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빠가 되니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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