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퀴즈!
다음 중 헬리콥터 조종사가 가장 싫어하는 날씨는?
1번 : 아주 맑고 해가 쨍쨍한 날
2번 : 천둥·번개를 동반한, 아주 흐리고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3번 : 정답 없음
정답은? 바로 3번!이다. 제시된 보기 중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다면 진짜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해가 쨍쨍한 날도,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도 아닌, '애매하게 흐린 날'이다. 왜 그런지 한 번 살펴보자.
비행에도 ' 정도(正道)'가 있다. 정해진 법과 규칙, 절차, 방식이 있는 것이다. 항공법에 의하면 항공기의 비행 규칙에는 크게 '계기비행 규칙'과 '시계비행 규칙'이 있다. 항공기 조종석에 장착되어 있는 수많은 계기를 참조하며 비행하는 방식인 '계기비행'과는 다르게, '시계비행'은 조종석 창문 밖 외부 참조물을 육안으로 식별하며 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행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낮은 고도에서 운용되는 헬리콥터는 보통 '시계비행' 규칙에 의해 비행을 하는데, 헬리콥터 조종사가 맑은 날씨에 해가 쨍쨍한 날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흐리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시계비행 규칙에 의해 비행을 해야 하는 헬리콥터 조종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흐린 날에는 비행을 할 수 없다. 법이 정한 기준에 의해 헬리콥터의 이륙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아니 일을 할 수 없는 날씨이니 이 또한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럼 헬리콥터가 비행을 할 수 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은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이 역시 항공법이 아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제172조(시계비행의 금지)에서 "시계비행 방식으로 비행하는 항공기는 해당 비행장의 운고가 450미터 미만 또는 지상시정이 5킬로미터 미만인 경우에는 관제권 안의 비행장에서 이륙 또는 착륙을 하거나 관제권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쉽게 말해 헬리콥터가 이·착륙하는 곳에서부터 측정한 구름까지의 높이가 450m가 되지 않을 때, 그리고 가시거리가 5km가 되지 않을 때 헬리콥터의 운항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날씨는 수치에 맞게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비록 법에서는 헬리콥터가 이륙할 수 없는 날씨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지만, 우리가 접하는 날씨는 아주 빈번히 '450m', '5km'라는 기준을 애매하게 오락가락한다. 바로 이 점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임무가 주어진 날, 임무 결정 시간에 'Go' or 'No-Go'로 임무 실시 여부를 깔끔하게 가름하면 참 좋을 텐데, 애매하게 흐린 날에는 비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도착해야 하는 곳의 기상이 애매할 때면 더욱 난감하다. 만에 하나 'Go'로 임무를 결정하고 출발했는데 도착지에 다다랐을 무렵, 기상이 이·착륙 최저치 기준보다 나빠지게 된다면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속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라는 이름의 코너를 떠올려본다. 안타깝게도 애정남에게 Go, No-Go 결정을 미룰 수는 없다. 이에 대한 이유도 항공안전법 제62조(기장의 권한)가 아주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항공기의 운항 안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이하 “기장”이라 한다)은 ..."
날씨가 애매하게 흐린 날, 기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