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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Dec 19. 2023

엄마 생일 축하해요! 그런데요... (26)



"엄마 생일 축하해요! 그런데요...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거죠?..."



  아가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내 &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가 때문에 근사한 음식점을 가지는 못하겠지만, 아내를 위해 맛있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보고자 열심히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거기에 더해 아가와 함께 계획한 써프라이즈 선물까지!  



  그런데 엄마 생일 이틀 전부터 아가가 맘마(분유)를 잘 안 먹으려 들더니, 갑자기 기저귀를 푹 적실 정도로 물변을 보았다. 어쩌다 하루겠거니 하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날에는 어제와 비슷한 물변을 연거푸 보는 게 아닌가? 



  우리 아가는 둔한 편이라 기저귀가 젖어도 울고 보챈 적이 없었는데, 지난 새벽녘에는 응가로 젖은 기저귀가 불편했는지 찡찡 거리며 엄마 아빠를 찾았다. 병원을 가야하나 싶었지만 아가에게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잘 자고 잘 노는 것 같아 며칠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요일, 그러니까 아내 & 엄마의 생일 당일,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새벽녘에 아가가 물변을 한 바가지로 누고는 한참을 찡얼거리다 잠들더니, 아침에는 엄마 아빠를 부를 힘도 남아 있지 않은지 축 늘어져 흐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엄마의 생일을 맞이하여 아빠와 아가가 준비한 써프라이즈 선물!을 증정하는데, 아가가 "엄마 생일 축하해요! 그런데요... 왜 이렇게 힘이 없는거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잽싸게 선물 증정식을 마무리 한 후, 아가에게 맘마(분유)를 만들어서 먹여주니 전처럼 잘 먹는 것 같아 한 시름 놓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기가 식사를 마치고부터 한 시간이 멀다 하고 기저귀를 흠뻑 적시는 물변을 누는 것을 보면서 '더이상은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행히 집 근처에 주말에도 진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가 있어서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접수 마감이라는 간호사님께 사정 사정을 하여 간신히 접수를 하였고, 진료결과 '장염' 판정이...!



  의사 선생님은 "외출 간에 균에 감염되었을 수 있으니 당분간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쓰는 물건에서 옮은 것일 수도 있으니 현재 사용하는 아기 용품을 잘 소독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아가가 병에 걸린 정확한 이유야 알 길이 없으나, 모든 잘못이 집에서 아가를 돌보는 아빠의 부주의 때문인 것만 같아 아내에게도, 아가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대로 '특수 분유'를 먹이기 위해 근처 마트를 뒤져보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은 탓인지 재고가 전혀 없었고,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대형마트에 가서야 분유를 구할 수 있었다. 집에서 가고 오는 길만 1시간... 그 사이 아가는 조금씩 찡얼 거렸고,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집에 오자마자 새로 산 분유를 타주는데, 특수 분유는 왜 이리 물에 잘 녹지도 않고 거품도 많이 생기는지... 아가도 처음 먹는 분유가 낯설었는지 분유를 몇 모금 먹자마자 분수 같은 토를 쏟아내는데... 토가 잔뜩 묻은 이불, 아기 수건, 옷 등을 세탁하는 일도 힘들고, 아가를 닦이는 것도 고됐지만, 입과 코에서 허연 토를 쏟아내며 괴로워하는 아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마음 아프고 힘들었다. 



  병원 진료에, 낯선 분유에, 생전 처음 먹어보는 약에, 아가는 지난한 하루를 보내느라 힘겨웠을텐데도, '오늘은 엄마 생일이니, 조금만 더 참아 볼래요!'라는 눈빛을 보내며 씩씩하게 병을 견디는 것 같아 보였다. 아가는 몸에 기운이 없는지 계속 축 쳐져 있었지만 많이 울지도 않고, 마지막 맘마까지 꿀떡꿀떡 잘 먹은 뒤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로 향했다.



  아가와 함께 보낸 엄마의 첫 생일은 그렇게 끝났다. 여유로운 커피 한 잔도, 느긋한 산책의 시간도 없었다. 생일이라는 게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일년에 딱 하루만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지 않는가. 만약 내가 아내였다면 엄청 속상하고 울적했으리라. 하지만 아내는 내가 아니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아가를 안고 달래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았고, 목소리 톤도 억양도 언제나 늘 그랬던 것처럼 상냥하고 다정했다. 나는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의 널뛰기를 했는데 말이다. 어쩌면 평소와 다름없는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 덕분에, 아가는 '엇, 나는 지금 아픈 것인가 아닌 것인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가야, 잘 견뎌주어서 고마워. 

   내년 엄마 생일에는 방긋방긋 웃을 수 있도록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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