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선물 준비하셨어요?" 함께 수영 강습을 받는 한 회원분께서 나에게 물었다. 무슨 선물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싶어서 "어떤 선물이요?"라고 되물으니, "아기 크리스마스 선물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곧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순간이 오다니!'라고 생각하며, 오래전 어느 겨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오늘은 기필코 잠들지 않으리라! 꼭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고 말리라'라며 굳은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누워 있기만 할 거야. 절대 잠들지 않을 거야!'라고, 그러고는 이내 '눈만 감고 있을 거야. 절대 잠들지 않을 거야'라며 다짐을 고쳐먹기 일쑤였고, 굳었던 다짐이 스르르 녹는 사이 아침이 밝고야 말았다. 분명 아주 잠시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았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뒤였다.
매년 더욱더 굳세게 다짐을 해보았지만,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계속해서 소원한 일로 남아 있었다. 사건이 벌어졌던 바로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올해는 기필코!'라고 다짐을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눈 깜짝할 사이에 환한 아침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해 크리스마스 아침의 풍경은 작년까지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당연히 머리맡에 있어야 할 선물 상자가 보이질 않았고, 낯선 종이봉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잽싸게 봉투를 뜯어보니 웬 현금이 ?
"엄마! 아빠!"를 외치며 거실로 달려 나갔다. 산타 할아버지가 현금을 놓고 갔을 리 없다며 엄마·아빠를 추궁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가면서 산타의 존재에 대해 긴가민가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산타 할아버지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현금, '돈'이라니!
몇 날 며칠 동안 엄마·아빠를 계속 몰아 새워 보았지만, 엄마·아빠는 한결같이 '모르쇠'로 일관하셨다. 충격적인 그날의 사건 이후, 나는 동심(童心)의 일부를 잃어버렸고,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굳은 다짐도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2023년의 크리스마스. 20여 년 전,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다짐은 내려놓았던 아이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된 후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문득 사건이 발생했던 그 해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 김에, 어머니·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따져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라며 말이다. 어머니·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셨고, 한바탕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
산타의 존재를 가장 잘 알 것 같은 어머니·아버지께서 산타의 존재 유·무를 확인시켜주지 않으시니, 섣불리 산타가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분간 우리 아가에게도 산타 할아버지는 멀리 멀리에 잘 있다고 말해주어야겠다. 엄마·아빠 말씀을 잘 들어야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중에 아가가 커서 "산타 할아버지 없는 거 아니야?!"라고 물으면 무어라 답해주어야 할까. 음... "크면 알게 될 거야!"라고?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