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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Jan 02. 2024

'1년' 후가 만기입니다. (28)






  2023년의 마지막 영업일이 되어서야 해냈다. 우리 아가를 위한 적금 상품 가입을 말이다. 가입한 적금 상품은 23년에 태어난 '토끼띠' 아기만 가입할 수 있는 특판으로, 연이율이 최대 10%에 달하는 매우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6만 명에게만 한정된 상품이었기 때문에 출시 직후부터 서둘렀어야 했는데, 아빠가 너무 게으름을 피우고만 것이다.



  진즉에 소식을 접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23년의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불현듯 생각이 난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월 최대 납입금이 20만 원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에 '귀찮은데 그냥 하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새해가 밝을 텐데 벌써부터 귀찮음에 물들어서야 되겠는가!'라는 경각심이 뒤통수를 두드리는 듯했다. 그날 바로 아내에게 SOS를 날렸다.



  집에는 프린터가 없었기 때문에 적금 가입 시 제출해야 할 서류를 챙기려면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해야만 했다. 이 추운 날씨에 아기를 들쳐 엎고 주민센터를 오가는 것은 아기에게나 아빠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우리 가정에는 만능 해결사 엄마가 있었다. 단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척 초조했지만, 적금 가입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며 '2023년의 마지막 미션' 완수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2023년의 마지막 평일, 결전의 날이 밝았고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뿔.사. 필요한 서류를 잘못 챙긴 것이다. 제출해야 할 서류는 '상세' 기본 증명서였으나, 엄마가 '일반'으로 출력을 해온 것이었다. '엄마... 왜 그랬...'.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포기'라는 유혹의 손길이 뻗쳐 올라왔다. 은행 근처에 주민센터가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하마터면 새해를 앞두고 큰 좌절감을 맛볼 뻔했다. 



  상품 가입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갓난 아가에게 핑크빛 적금 통장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 적금 상품 이름도 무려 '깡총 적금'이라니. 통장 제일 앞면에 적힌 예금주 이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적금은 1년 만기, 월 20만 원 납입으로 설정하였다. 우대금리까지 포함하여 10% 이율의 적금이지만, 적금 특성상 이자가 납입 총액의 10%는 아닐 터였다. 12번을 납입하면 원금은 240만 원일 것이고, 세금을 제하면 1년 뒤 대충 20만 원 남짓한 이자를 받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문득, 1년 뒤라고 생각하니 '그때도 지금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가입한 적금이 만기가 될 때면 2024년을 마무리하며 2025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었을 때 '후회'와 '미련',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한 달, 한 달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 비록 나의 의지는 매우 연약하겠지만, 매달 말일이면 찾아오는 '적금 납입일' 꺼져만 가는 나의 의지에 기름을 끼얹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매월 말 일, 그날이 오면 지난 한 달의 시간을 반성하며, 다가올 한 달을 다시금 알차게 보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을 맞이할 때쯤 한 해의 결실로서 만기가 된 적금을 손에 들겠지. 한 해 동안 계획한 여러 목표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그때쯤 우리 아가는 지금보다 훨씬 성장해 있겠지? 물론, 아빠와 엄마도!

  벌써부터 기대된다. 2024년, 너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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