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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Jan 16. 2024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29, 30)





  지난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할아버지께서는 식사도 잘하시고 종종 산책도 즐기셨는데, 하루아침에 응급실을 거쳐 요양원에 자리하게 되신 것이다. 



  '길어야 한 달'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은 후, 가족들은 차례차례 면회 일정을 기다렸다. 나의 차례는 1주일 뒤였는데, 안타깝게도 나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침 일찍 부음을 접한 후 부랴부랴 몸을 움직였다. 내 짐을 챙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가를 데리고 나서야 하는 갑작스러운 외출은 꽤나 부산스러운 시간을 필요로 했다. 



  여벌 옷, 기저귀, 이유식, 범보 의자 등등,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짐을 챙겼다. 혹여나 무엇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짧지 않은 외출 길이 아가에게나, 엄마·아빠에게나 무척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장남인 아버지를 도와 3일간의 상(喪)을 치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육아하는 아빠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빠가 육아 라이프를 잠시 내려놓는다고 한들, 아가의 인생 시계가 멈춰 서지는 않는 법. 아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일터로 향하던 엄마의 발걸음은 당분간 집에 머물러야 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아빠의 부재를 대비하였다. 아빠는 아가가 태어난 후부터 반나절 이상 집을 비운 적이 없었는데, 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을 떠나 있게 되었다. 아가에게도, 엄마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무척 낯선 시간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지속되던 탓에 한동안 왕래가 끊겼던 친척들이 할아버지 덕분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대화의 중심에 귀여운 아가의 얼굴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아가에게로 향했다. 작디작은 생명의 존재만으로도 망자에 대한 슬픔이 가득한 공간이 밝고 화사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 서서 아가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영정 사진 속 할아버지의 얼굴과 맑고 밝은 아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이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치 '나'는 예외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죽음의 순간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할 수도 있고,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야 하는 죽음의 순간만큼은 아직 머나먼 곳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렇게 애써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누구나 꼭 한 번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럼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라는 냉소적인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지혜가 짧은 나로서는 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다만, 언젠가 '마지막'이라는 순간에 가닿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사소한 욕심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함을 건네야겠다고 다짐해해 볼 뿐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아가를 꼬옥 안아보았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오래오래 느끼고 싶은 따뜻함이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죽음을 떠올려본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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