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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Jan 23. 2024

초보 아빠의 레벨 업?! (31)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이 있다. '먹으면 배부르다'라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참인 명제가 분명해 보이지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은 참, 거짓을 논하기 전에 과연 명제로서 성립이 가능한 지부터 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알 것이다. 아기가 잘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가 절로 불러온다는 사실을. 아기가 눈을 반짝이며, 작은 입을 오물거리면서, 꿀떡꿀떡 맘마를 삼켜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이라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아빠로서 무척이나 배고픈 한 주였다.



  아가의 갑작스러운 설사 증상으로 인해 병원을 찾았고, '장염'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먹는 양이 많지 않았던 우리 아가는 장염에 걸린 뒤로 먹는 양이 더욱 줄었다. 병원 다녀온 후, 어느 날은 500ml를 간신히 먹고도 분수 토를 하며 엄마 아빠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속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잘 먹지도 못하고 연신 설사를 해댔을까. 또 속이 불편하니 잠도 잘 못 자고 힘 있게 놀지도 못하고. 아가 스스로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지만 엄마·아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아가가 아픔을 잘 견디고 버티며 어서 빨리 병을 이겨내기를 응원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아기가 아프면 엄마·아빠는 배로 힘들어진다. 처음으로 아픈 아가를 돌보았는데, 육아 시작 후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듯싶었다. 이따금씩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며 우는 아가를 보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가가 토하고 설사를 하면서 더러워진 옷가지며 이불이며 방바닥이며, 하지 않았어도 될 집안일이 추가로 쌓이고 쌓이니 없던 짜증까지 솟구쳐 올라왔다.



  하지만 아빠보다 엄마가 더 근심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집을 나서지만, 어디 일이 손에 잡혔겠는가. 일은 일대로 힘들고, 집에서 울고불고하는 아가를 떠올리느라 마음도 쓰리고. 집에 돌아오면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는 아빠를 보는 것도 꽤나 불편했으리라. 아빠는 엄마의 속을 모를 리 없었지만, 고된 일을 마치고 귀가한 엄마를 향해 환한 얼굴을 보이지 못했다. 속 좁은 아빠...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도록!



  엎친 데 덮친다고, 엄마는 회사에서 계획된 일정으로 1박 2일 워크숍을 떠나야 했다. 사실, 아기보다는 아빠가 더 문제였다. 소인배 아빠가 울고불고하는 아가를 1박 2일 동안 잘 어르고 달랠 수 있을지, 아빠조차 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엄마가 워크숍을 떠나는 당일 아침에도 아가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첫 번째 맘마를 먹은 뒤 있는 듯 없는 듯, 자는 듯 마는 듯 꿈나라로 떠났을 텐데, 그날의 아가는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우는 날인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순순히 꿈나라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아가도 아빠도, 엄마를 배웅하지 못했고, 엄마 역시 온다 간다 인사말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집을 떠나야 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이다. "Amor Fati"라고 했던가.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 아빠는 새롭게 의지를 불태워보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아가가 잘 먹지 못하는 중에도 일단 잠이 들면 평소처럼 낮잠도, 밤잠도 잘 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곧 있으면 든든한 지원군이 등장한다는 희망이 아빠의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주었다.



  든든한 지원군은 다름 아닌 아빠의 엄마·아빠. 아빠에게도 엄마·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하던지. 오랜만에 아가를 만난 아가의 할머니·할아버지는 연신 아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재미없는 아빠와 달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아가의 얼굴에서 한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물론 할머니·할아버지가 왔다고 해서, 아빠의 집안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할머니·할아버지의 식사와 잠자리 등을 챙겨야 했기에 집안일은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가를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존재와 한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빠의 어깨는 가벼웠고 마음은 평온했다.



  문득 많은 출산 정책이 등장하지만, 얼마의 돈을 쥐여주는 것보다 엄마·아빠가 언제라도 마음 편히 아가를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 물론 돈도 많이 쥐어지면 좋겠...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일정이 있으셨던 지원군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고, 아빠는 다시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다.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기 모드에 돌입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다행히 조금씩 차도를 보이는 아가는 전날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잤다. 그렇게 먹이고, 재우고, 씻기다 보니 어느덧 엄마의 귀가 시간!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월패드의 알림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엄마를 다시 만난 아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였다. 아가의 미소를 바라보며 엄마도 아빠도 지난 한 주간 동안 가득 쌓아왔던 근심과 걱정, 불안과 염려를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또 육아 라이프의 한고비를 넘은 것인가 싶었다. 고난과 역경은 인간을 한 차원 더 성숙하게 만든다고 하던데, 아빠는 충분히 그만한 고난과 역경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은 아빠로 한 단계 '레벨 업' 했다고나 할까?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한 주였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서는 '온 마을까지' 절대 바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여러 출산 장려 정책이 등장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지 엄마·아빠가 마음 편히 아이 곁에 머물 수 있는 정책이 꼭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아이에게는 엄마·아빠의 따뜻한 품이 가장 큰 보약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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