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야'라는 말은 사실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장염 때문에 아파서 우는 아가를 달랠 때도, 애타는 내 마음을 진정시킬 때도, '아프면서 크는 것이라고', '아프고 나면 더 튼튼해질 것이라고' 말해보았지만 당시에는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그저 이 아픔의 시간이 어서 빨리 흘러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은 더디 가지 않았다. 아픈 와중에도 잘 자는 아가 덕분에 저녁이 되기가 무섭게 아침이 밝았고, 해가 떠 있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면서 아가가 견뎌야 하는 아픔의 시간도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병원 진료를 받을 때만 해도 "아기의 장염은 적어도 2주 이상의 회복 기간이 필요한 긴 싸움이 될 것"이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2주의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이었다. 하지만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낮에도 밤에도 잘 자는 아가는 1주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더 이상 물변으로 축축한 아가의 기저귀를 보며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쁘던지!
우리 아가는 유독 입이 짧다. 배고프다고 목이 터져라 울어재껴서 부리나케 따땃한 분유를 가져다줘도, 허기만 면하면 그만이라는 듯 80ml 정도만 허겁지겁 먹다가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억지로 붙잡고 달래 가며 먹여도 하루에 먹는 양이 700ml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이런 아가가 장염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먹으면 토하고, 삼켜도 설사로 다 내보내니 얼마나 마음이 쓰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일주일간 장염을 앓았던 아가가 갑자기 달라졌다. 아프면서 크는 게 맞다지만, 아프면서 배도 훌쩍 커진 걸까?
설사 증상이 점점 옅어지면서 특수분유에서 일반분유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200ml를 담은 젖병을 깨작깨작 거리다가 잠들었을 텐데, 200ml를 꿀떡꿀떡 다 먹고는 빽빽 울어대는 게 아닌가? 그래서 40ml을 더 주고, 다시 한번 40ml을 더 주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나 싶었다.
그런데 스르르 잠들었던 아가가 또 깨서 맘마를 찾는 것이 아닌가? 후다닥 80ml을 더 먹였고, 계산해 보니 자기 전에 먹은 양만 360ml? 오랜만에 잘 먹는 아가를 보니 흐뭇했지만, 이제 막 장염에서 나은 아가가 밤새 저 많은 분유를 소화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아가는 뒤척임 없이 새벽을 잘 보냈고, 엄마·아빠와 함께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아가가 태어난 지 만 6개월이 가까워 오면서 이유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식을 시작하려던 주말, 갑자기 아가가 설사를 해대는 바람에 이유식을 미뤘고, 장염이 어느 정도 나은 지난주 주말에서야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아가이기도 했고, 장염 때문에 속이 놀랐을 테니 이유식을 잘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쌀미음 한 숟갈이 입술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쌀미음 30ml는 그렇게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렸다. 장염 덕분에? 눌려있던 식욕이 폭발한 것인가...?
놀라운 건 맘마 먹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늘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우리 아가는 엄마·아빠가 아무리 재롱을 부려도 웃음에 참 인색했다. 아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도 이리 힘드니, 웃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언감생심. 그랬던 우리 아가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아빠가 나타나면 싱글벙글 웃으며 살인 미소를 날리는 게 아닌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뿐만이 아니었다. 낮 동안에도 별 뜻 없는 말을 건넸을 뿐인데도 '헤헤' 거리며 싱글벙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아빠가 옆에 나타나면 두 팔을 쭈욱 뻗어 아빠한테 안기려 하고, 아빠 품에 안겨 있을 때 엄마가 옆에 다가서면 또 두 팔을 쭈욱 뻗어 엄마에게 안기려고 하고. '분명히 장 속 세균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가가 장염을 극복하고 맘마도 잘 먹으며 활발해져서 참 좋은데, 참 좋은데...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 생겼다면 아가의 낮잠과 낮잠 사이의 텀이 길어졌다는 것? 이전에는 아가가 2시간 정도 깨어 있으면 금세 졸려하며 기절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제 2시간 반은 거뜬하게 깨어 있으니, 짧았던 아빠의 휴식시간은 더욱 짧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 아빠로서 아주 조금... 아쉽다. 흙 ㅋ
아가를 키우다 보니 '옛말이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역시 아가는 아프면서 크는 게 맞나 보다. 그리고 아프고 나면 몰라보게 쑥 크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꼭 아가만 그렇겠는가? 아빠도 아픈 아가를 돌보며 애를 태워보았으니 전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졌으려나?
아기들은 아프면서 크는 게 맞다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만 아프다 말았으면, 짧게 아프다 나았으면 좋겠다. 아마 모든 부모들이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ps 아랫니 두 개도 뿅 하고 등장!!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