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가 되기 전, 아주 잠시 전자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회사를 다녔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차마 어디 가서 회사원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을 쉬이 꺼내지는 못한다.
회사에서 몸담았던 직무는 TV 사업부 소속의 마케팅 직무였다. 마케팅 직무의 일은 TV를 잘 팔기 위해 자사와 경쟁사의 제품을 분석하고, 적절한 판매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의 주된 업무는 여러 회사의 TV 판매 데이터가 담긴 엑셀 파일을 이렇게 저렇게 가공하여 '왜' 이렇게 판매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를 뽑아내는 일이었다.
숫자가 잔뜩 나열된 엑셀 파일 시트를 들여다볼 때마다 '신입사원에게 인사이트라를 뽑아내는 일을 맡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 속에서 뽑아낸 원인과 결과, 이유, 대응 방안 등등(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을 끄적이고 있다 보면 '내가 마케터인지, 시나리오 작가인지 모르겠다'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의 업무 수준은 처참했다. 하기야 이제 막 입사한 스물여섯 청년이 TV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나는 TV도 잘 안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나 어쩌겠는가. 맡은 일은 해내야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사, 경쟁사 홈페이지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TV에 대한 스펙을 살폈다. TV의 크기, 기능, 특징 등을 정리하였고, 각종 뉴스 기사와 소비자 트렌드 자료를 읽으며 구매자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TV와 관련된 기술 자료를 들여다보며 LED는 무엇이고 OLED는 무엇이며, 패널이 어떻고, 화질이 어떻고 등등 입사 전까지 전혀 관심 없었던 TV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차츰 시간이 흐르다 보니 TV만 보면, '저 TV는 어떤 TV일까' 하며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TV 뒤편에 붙어 있는 모델명을 살피게 되었고, 모델명만 보아도 '이 TV는 크기가 어떻고, 화질이 어떻고, 어떤 기능이 있고, 어떤 유통 채널로 판매되고...' 등등의 생각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에 더하여, 소비자는 어떠한 마음으로 TV를 선택하는지 상상해 보곤 했으며, 여러 유형의 TV 디자인과 기능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치열하게 TV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TV에 대해 애정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마음은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이따금씩 TV를 마주칠 때면 괜한 뭉클함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 한편에 견고하게 서서, 검은 화면 가득히 고요함을 내뿜고 있는 TV를 볼 때면 '내가 사랑했던 최초의 무생물이 바로 저 TV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짧지만 열렬히 사랑했던 TV와 이별을 맞이했고, 얼마 전까지 꽤 오랜 기간 헬리콥터에 눈과 귀, 두 손과 발을 바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속세의 모든 것과 연을 끊다시피 하며, 온 마음을 다해 작은 생명체를 돌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육아하는 아빠가 될 줄이야.
아빠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기들을, 아이들을 무서워했다. 저 작은 존재들이 하는 말은 모두 외계어 같았고, 그들은 가까이하기에는 불편한 먼 나라의 이방인처럼 생각했다. 분명 나도 말 못 하는 아기였을 때가 있었을 것이고, 세상 물정 모르던 아이였을 때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우리 아가의 구수한 똥 기저귀 냄새에도 미소를 머금는 전에 없던 자아를 갖게 되었다.
지난주에는 아가와 함께 대학 병원에 다녀왔다. 한 달 여전 첫 번째 방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가의 4개월 영유아 검진에서 '사경'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있었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첫 진료 때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들 수 있었다. 이번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간단한 재활 치료를 받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대기실에 앉아 아가의 토실토실한 허벅지를 쪼물거리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니,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아재활의학과 대기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는 신생아부터 유아까지 모두 어린아이들이었고, 보호자는 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었다. 모든 보호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입을 가리고 있었지만, 아마도 여기에 모인 모든 어린 생명들의 회복과 안녕을 바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가가 태어나면서 언제부터인가 나의 인스*그램과 *튜브에는 여러 아기들의 사진과 영상이 줄지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전 다른 아이들에게 눈길 주는 일이 없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아가의 출생이 새로운 '나'를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아가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의 세상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아빠가 되기 전 나의 생각의 틀은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고작 몇 년 전을 회상하고, 몇 년 후를 상상하는데 그칠 뿐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아가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생각의 폭은 조금씩 확장하기 시작했다.
나를 낳고 기르며 겪으셨을 부모님의 기쁨과 슬픔, 기억 속 희미한 유년 시절의 나, 그때의 내가 바라보던 세상, 지금 우리 아가가 자면서 꾸는 꿈나라의 모습, 그리고 이 아가와 아가의 또래 친구들이 살아갈 가깝고도 먼 미래의 희망찬 모습까지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막 아빠가 된 나에게도, 사랑하는 아가를 통해 알게 되는 것들, 알게 되면서 보이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 무궁무진한 세상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내일 아침에 다시 아빠랑 만나서 재미난 세상을 만들어보자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