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아빠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다양한 동요를 섭렵할 수 있다.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집이라면 꼭 하나씩은 있다는 '튤립 사운드북' 덕분에, 애매하게 알고 있던 동요 가사도 이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 아내는 아가에게 동요를 불러줄 때마다 매번 가사를 틀리는데, 틀린 가사를 지적해주고 싶은 마음이 쿰쩍쿰쩍 거릴 때가 많다.
요즘 내가 꽂혀 있는 동요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라는 제목의 동요이다. 동요의 가사는 무척 간단하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라는 가사가 노래 앞 뒤로 반복되고, '눈도 감지 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라는 부분이 중간에 한 번 포함되어 있다. 노래 가사에 '춤을 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로 무척 신나는 리듬의 동요지만, 아기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아마 대부분을 느낄 것이다. 이 동요가 많은 부모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믿거나 말거나...)
신생아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아기는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면 먹고, 먹으면 잔다. 자다가 싸고, 또 일어나서 먹는다. 먹으면? 다시 잔다. 그러기를 무한 반복... 우리 아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움직이기는커녕 잘 울지도 않았다. 자는 아가를 보고 있으면 숨은 잘 쉬고 있는 것인지 걱정되는 마음에, 아가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즐겁게 춤을 추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동요를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제발 잠시만이라도 아가가 '그대로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요를 부르고 있다. 맘마를 먹을 때, 기저귀를 갈 때, 옷을 갈아입을 때, 목욕을 할 때 등등, 아가는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쉴 새 없이 몸을 들썩들썩, 고개를 도리도리, 팔을 훠이 훠이, 다리를 허우적허우적 거린다. 아빠는 혹여나 아가를 만지다가 어디 하나 바스라 뜨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애타게 "그대로 멈춰라!"를 외쳐본다.
문득, 과거에도 '제발 그대로 멈춰라'를 애타게 부르짖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는 바로 막 비행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헬리콥터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자리 비행은 "항공기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아니하는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비행" (출처 :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아니, 가만히 있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냥 조종간에 손도 안 대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헬리콥터도 자연스레 가만히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조종석에 앉아보니 내 예상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분명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안 할수록,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으로 빠져들어갔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조종간에 아무런 조종 입력을 가하지 않으면, 헬리콥터 역시 어떠한 움직임도 만들어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헬리콥터를 공중에 떠오르게 만드는 '바람'의 움직임을 간과함으로써 벌어지는 오해이다.
단일 회전익 계통의 헬리콥터의 경우, 주 회전 날개와 꼬리 회전 날개로 헬리콥터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회전하는 두 날개의 각도가 변하면서 바람의 방향, 세기가 결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바람이 헬리콥터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바람은 항상 일정하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정하게 흐르지 않는 바람은 조종사의 조종 입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헬리콥터를 이리저리 요동치게 만든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회전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헬리콥터 동체, 지면, 외부 장애물 등과 부딪히면 소용돌이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용돌이는 다시 회전 날개에서 나오는 바람과 부딪히면서 불규칙한 공기 흐름을 생성한다.
한 번 만들어진 공기 흐름은 지속적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헬리콥터를 전·후·좌·우, 위·아래로 움직이게 만든다. 만약, 이때 조종사가 지속적으로 수정 조작을 하지 않으면 헬리콥터의 움직임은 점점 커지게 되고, 결국 제자리에 머무르고자 했던 헬리콥터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안드로메다'로 향하게 된다. 가만히 있으려고 가만히 있다가는 영영 가만히 있게 될 수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당시 나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대로 멈출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몇 달간의 비행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헬리콥터 조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조종사로서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지만, 아빠로서의 간절한 바람은 과연 언제 즘 이루어질 것인지...!
오늘도 "즐겁게 춤을 추다가~" 동요를 부르며 아가에게 옷을 입혔다. 어김없이 아가는 들썩들썩, 도리도리, 훠이 훠이, 허우적허우적거리며 아빠를 진땀 흘리게 하였다. 아빠는 해맑게 웃고 있는 아가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그대로 멈추지 않으면 또 어떤가. 즐거우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