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Mar 02. 2024

보이지 않아도, '손'은 알 수 있도록!

출처 : (좌) 실전배치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직접 타보니… (naver.com) / (우)[포토]`수리온` 야간 비행, 최첨단 계기판 (naver.com)



  회사에서는 이따금씩 직원들의 가족, 친지, 지인 등을 초대하는 행사를 열곤 한다. 폐쇄적인 회사의 특수성 때문인지, 지인들에게 행사 소식을 전하면 기쁜 마음으로 응하는 경우가 많다. 행사는 보통 사무실을 간단히 둘러본 뒤, 회사에서 다루는 장비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계류장으로 이동하여 헬리콥터에 탑승해 보는 순으로 진행된다. 



  넓은 주차장에 차들이 늘어서 있는 것처럼, 광활한 계류장에는 십수 대의 헬리콥터들이 열을 맞춰 세워져 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꼭 한 번씩은 탄성을 내뱉는다. 그늘 한 점 없이 쭉쭉 뻗어 있는 드넓은 계류장을 마주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겠지만, 우람한 자태로 도열해 있는 헬리콥터를 보는 것이야말로 무척이나 생경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헬리콥터를 둘러보는 시간이다. 초청객들은 헬리콥터의 기능, 능력, 목적 등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승객실에도 올라타 보고, 조종석에도 앉아볼 수 있다. 단연 인기 있는 코너는 역시나 조종석!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조종석에 앉아 헬멧을 쓴 채로 인증샷을 찍고 싶어 늘 대기 줄이 길다. 



  조종사의 도움을 받아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으며 조종석 시트에 몸을 구겨 넣으면 이내 어지럽게 펼쳐진 디스플레이, 복잡하게 생긴 계기판, 상·하부 콘솔의 각종 스위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 많은 스위치들, 다 쓰는 거예요?" 라고.



  조종석에 앉으면 조종석 전·후·좌·우로 계기판, 전면 패널, 상부 콘솔 및 하부 콘솔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숙련된 조종사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약어로 쓰인 수많은 스위치가 있다. 조종석에 앉은 일반인은 '설마 이 많은 스위치들이 다 쓰이겠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많은 스위치에 조종사의 손길이 닿아야지만, 헬리콥터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 있다.



  헬리콥터에는 내·외부 등화, 전면 유리창 와이퍼, 화재 감지  및 소화 장치, 교류 및 직류 전원, 피토튜브 시스템, 방빙 및 제빙 장치, 통신 장비, 연료 제어 장치 등등 매뉴얼을 보지 않고는 그 수와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장비가 장착되어 있다. 장비의 수와 종류에 비례하여, 이를 제어하는 스위치가 조종석을 둘러싸고 놓여 있는 것이다. 스위치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조종사는 다 알아야 한다. 어느 곳에 어떤 스위치가 있으며, 무슨 기능을 하는지 말이다. 심지어 눈을 감고도 손을 가져다 댈 수 있을 정도로!



  '대충 이름이 다 쓰여 있는 것 같은데, 눈으로 찾으면서 스위치를 조작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품는 이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보겠다. 



  헬리콥터가 출동하는 상황은 보통 매우 급박한 때인 경우가 많다. 불이 났다던가, 환자가 생겼다던가, 수색이나 정찰이 필요한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헬리콥터가 이륙하기 전까지 점검해야 할 항목이 무려 70여 가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기종에 따라 항목의 수는 상이하다) 즉, 조종사의 손이 적어도 70번은 움직이며 스위치를 조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스위치의 위치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면? 이후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나와 같이, 육아의 길을 걷고 있는 부모라면 종종 애가 타는 긴박한 상황을 맞닥뜨리곤 할 것이다. 아기가 응가를 해서 울고 있는데 늘 근처에 있던 기저귀가, 아기 욕조에 물을 받으려고 하는데 멀쩡히 잘 있던 온도계가, 급하게 분유를 타야 하는데 갑자기 분유 스푼이 도통 눈에 보이질 않는 상황을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찔한 상황은 아마 밤 수유를 위해 어두컴컴한 아기방에 들어갔는데, 가제수건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아닐까?



  육아를 하면 할수록 새삼스레 '제자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손이 아무리 재빠르더라도 빠른 손이 가닿아야 할 곳이 어딘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뒷일은 감당하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정리 정돈'이야말로 단순히 깔끔해 보이는 차원을 넘어서, 긴박한 상황을 대비하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조종사로 일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부모 역할을 하는 데에 참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찬가지로, 부모 역할을 하며 겪은 여러 시행착오들이 복직 후 다시 조종사로 일하며 의미 있게 쓰일 것이라 기대해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본격적인 육퇴를 준비해 보려 하는데... 이런,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여보!? 아기 옷 세탁 세제가 여기 있었는데...??;;;"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