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책상 앞에 우직하게 앉아서 요령을 부리지 않고 성실한 자세로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헬리콥터 조종사들끼리 하는 말 중에도, '조종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조종도 공부처럼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엉덩이의 예민한 감각을 느끼며 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엉덩이의 감(感)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조종사의 '쀨'(Feel)이 엉덩이에 있다는 것은 조금 거시기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그 이유를 따져보면 결코 엉덩이가 가진 감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3차원 공간 속에서 비행하는 조종사는 '중력'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2차원 평면에서 움직이는 운전자는 느끼지 못하는 '위, 아래로 작용하는 힘'의 영향을 말이다. 항공기가 수평 비행을 할 때는 중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순간적으로 조종간을 밀거나 당기게 되면 우리 몸에 작용하는 중력의 힘을 맛볼 수 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밀면 항공기의 기수가 숙여지면서 순간적으로 1G보다 낮은 중력이 작용하고, 반대로 조종간을 당기면 항공기 기수가 들리면서 1G보다 높은 중력이 작용한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열차가 급강하, 급상승을 할 때 느끼는 몸의 상태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1G보다 낮은 중력이 작용하면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1G보다 높은 중력이 작용하면 몸이 내리 눌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때의 G값, 곧 중력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는 신체가 바로 시트에서 하중을 받는 조종사의 엉덩이며, 조종사는 이 엉덩이에 전해지는 느낌으로 항공기의 미세한 자세 변화를 '캐치(Catch)'해낼 수 있는 것이다. (참고 : 정인웅(2022), 『언제나 파일럿』, 루아크, p126-127 )
하지만 모든 조종사가 조종간을 잡을 때부터 엉덩이의 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몇 백 시간 이상의 비행 경험이 쌓이고 쌓여야만, 엉덩이가 붕 뜨는 느낌, 혹은 엉덩이가 시트에 내리 눌리는 느낌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아직 엉덩이의 감을 잡지 못한 조종사가 항공기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계기판의 계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하지만 조종사가 조종간을 움직인 뒤 계기를 확인할 때면, 이미 항공기의 자세 변화가 시작되고도 한참 후일 가능성이 높다. 그 말인즉슨, 언제나 조금씩이 타이밍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것... 어쩌겠는가. 아직 엉덩이가 무르익지? 않았는걸.
조종사에게 감이 필요하듯이, 육아하는 아빠에게도 감이 요구된다. 아기가 배고파하는지, 졸려하는지, 심심해하는지 등등, 아기의 순간적인 표정과 몸짓만 봐도 단번에 아기의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는 그 감이 말이다. 하지만, 감이라는 게 어디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인가.
지난 9개월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웃지 못할 해프닝, 몸과 마음이 타들어가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 조금씩 아빠도 그놈의 '감'을 얻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 덕분에 요즘 우리 아가는 너무 많이 울지 않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다. 그래, 그럼 된 거지 뭐!
하지만 아직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가의 '웃음 포인트'. 너는 도대체 무엇이 좋아서 그리 웃는 것이니...? 아빠는 그게 참 궁금하다. 그렇지만 뭐... 네가 좋으니까 웃는 것이겠지?
하하하. 아빠도 그냥 같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