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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Apr 16. 2024

문.센. 정복기 (42)

출처 : 한라산 정상부 헬리패드 | 연합뉴스 (yna.co.kr)



  헬리콥터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헬리콥터의 특징 덕분에, 헬리콥터는 착륙 장치인 스키드(Skid) 또는 바퀴(Wheel)가 닿을 수 있는 작은 지면 공간만 허락된다면 어디든 뜨고 내릴 수 있다. 산악 지형이 발달한 우리나라 국토에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이 바로 헬리콥터인 것이다.



  하지만 헬리콥터의 가장 큰 특징 덕분에 조종사가 느끼는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헬리콥터는 목적지가 산꼭대기에 있든, 땅 끝에 있든, 아니면 골짜기 사이에 꼭꼭 숨어 있든, 그 위치에 상관없이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만 조종사에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조종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몇 개의 숫자로 나열되어 있는 좌표가 전부일뿐.



  다행히 기술의 발전 덕분에 비행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좌표만 입력하면 출발지에서부터 착륙해야 하는 정확한 지점까지 항로를 안내해 주는 GPS 기반의 항법 장비가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종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달랑 지도 하나뿐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하지만 항법 장비가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따금씩 장비가 먹통이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적게는 몇 미터에서 크게는 몇 킬로미터까지 오차가 발생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위치를 알아도 그곳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



  내비게이션은 바로 코앞에 착륙 지점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3차원 공간에 떠 있는 조종사의 눈에는 온통 푸르른 숲이고, 파아란 물이고, 어두운 흙색 논과 밭뿐이다. 분명 정사각형 모양으로 까맣게 포장된 지면 위에 하얀색으로 칠해진 'H'자가 보여하는데,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조종사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대부분의 헬리콥터 조종사는 초행길을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이미 수없이 많이, 자주 가본 곳이라 할지라도 계절의 변화, 주변 경관의 달라짐, 날씨 상태, 혹은 조종사의 컨디션에 따라 착륙 지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가야 한다면 그 마음이 심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착륙 지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료마저 부족한 상황이라면... 상상만 해도 오싹함이 느껴진다.



  조종사로서 경험했던 초행길의 순간을 떠올리다 보니, 우리 아가를 포함하여 많은 아기들이 얼마나 많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에 적응할 틈도 없이, 외부 환경의 끊임없는 자극에 둘러싸여 있으니 매일매일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까.



  불안한 마음 때문에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아가의 '문화센터' 방문을 말이다. 문화센터에 개설된 여러 수업들이 아기의 오감발달과 사회성 함양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혹여나 아가가 갑자기 마주한 낯선 환경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떡하나, 다른 아기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나, 나쁜 병균이나 안 좋은 물질 때문에 해를 입으면 어떡하나 등등의 걱정거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면서 아내와 함께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다. '처음이 없다면 그다음을 기대할 수 없을 테니, 일단 시도해 보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물론, 새해가 한참 지나서야 달리 먹은 마음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엄마·아빠의 망설임은 걱정을 빙자한 귀찮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아가도 대 만족! 아가는 다른 아기들의 울음 '대합창' 속에서도, 연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촉감 놀이를 즐겼다.



  아가는 아기 눈사람이 되어 눈밭을 굴러보기도 하였고, 작은 손으로 쌀가루눈을 뭉쳐보기도 하였으며, 옆에 있는 친구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생애 첫 친구를 사귀는 경험도 해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문.센.'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는데!



  짧은 놀이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놀이 시간은 무척 즐거웠지만, 놀이를 마무리한 광경은 처참함 그 '잡채'. 엄마, 아빠는 열심히 아가의 손과 발을 닦인 뒤 옷을 갈아입혔다. 기진맥진한 엄마, 아빠는 서로의 몰골을 바라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 저녁은 외식!



  새해를 맞이한 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문화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해가 되어 흘려보낸 지난날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새해가 되면서 품었던 여러 각오, 결심을 금세 잊어버린 채 살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가의 귀한 시간, 아빠의 '귀찮음' 때문에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더 큰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새'다짐을 더해본다. 



  아직은 남아 있는 새해?의 시간들은 더욱 따뜻하고 어여쁜 추억을 쌓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즐거웠다 2024년 1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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