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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y 11. 2024

조마조마, 노심초사...


출처 : (좌) 국방일보 / (우) 연합뉴스



  헬리콥터 조종사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를 꼽아달라고 하면, 아마 조종사 열 명중 열명 이상이 '외부 화물 공수 임무'를 언급할 것이다. 작은 조종간으로 커다란 헬리콥터를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헬리콥터 바닥으로부터 줄을 길게 늘어뜨려 커다란 화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비행해야 하는 임무를 어떻게 어렵지 않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화물 공수 임무의 경우, 화물을 승객실(또는 화물칸) 내부에 싣고 운반하지만, 화물의 부피가 승객실 내부의 크기보다 크거나, 화물을 내려놓아야 하는 지점에 헬리콥터의 착륙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화물을 단단히 포장한 뒤 줄을 길게 매달아 헬리콥터 하부에 장착된 인양 고리에 걸어 운반을 해야만 한다.



  조종사가 외부 화물 공수 임무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물 없이 비행할 때보다 통제해야 하는 변수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먼저 엔진의 힘, 동력 사용량이 많아지는 점을 들 수 있다. 헬리콥터 자체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은데, 무거운 화물까지 들어 올려야 하니 평소보다 더 많은 동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인즉슨, 그만큼 조종사가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여유 동력이 적어진다는 데에 있다. 



  엔진의 최대 동력 값은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다. 만약 화물을 매달고 비행을 하던 중 한쪽 엔진이 고장 나거나, 바람이나 장애물 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동력 사용량을 늘려야 하는 경우, 조종사는 매우 긴박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최댓값을 초과하여 동력을 사용하게 되면 엔진이 고장 나거나, 동체에 충격이 가해져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에 매달려 있는 화물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조종사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의 무게도 커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 조종사와 승무원, 그리고 많은 지상요원들의 합이 잘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부 화물 공수 임무의 경우, 화물을 포장하는 요원의 손에서부터 임무가 시작된다. 절차에 맞게 화물을 포장하지 않을 경우 공중에서 화물의 결박이 풀려 화물을 떨어뜨릴 수 있고, 화물이 균형에 맞게 포장되지 않았을 경우 비행 중 화물의 진자 운동으로 인해 헬리콥터의 조종 능력이 상실되어 추락할 수도 있다. 화물 포장을 맡은 요원의 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공중에 떠있는 조종사, 승무원뿐만 아니라, 지상에 위치한 통제 요원들에게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화물을 헬리콥터 동체 하부에 매달기 위해서는 헬리콥터가 공중으로부터 서서히 화물이 위치한 곳 바로 위까지 내려와야 한다. 헬리콥터가 화물 바로 위에서 안정적으로 제자리 비행 상태를 유지해야지만 화물 위에 서있는 인원(훅맨, Hook Man)이 화물의 결박 고리를 헬리콥터의 인양 고리에 안전하게 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조종사의 시야에 훅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조종사의 눈이 되어 주는 존재가 바로 신호수와 승무원이다. 화물 위로 내려오는 헬리콥터 앞 쪽에는 신호수가 위치하여 조종사에게 앞·뒤·좌·우 그리고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지시를 하고, 헬리콥터 승객실에 탑승해 있는 승무원은 동체 하부에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헬리콥터 아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조종사에게 전달한다.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면서 엄청난 소음과 강한 바람이 발생하지만 조종사, 승무원, 신호수, 훅맨, 누구 하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는 임무가 바로 외부 화물 공수 임무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헬리콥터에 긴 줄이 늘어뜨려져 있다는 점이다. 동체와 화물을 잇고 있는 인양줄의 길이는 헬리콥터의 크기, 화물을 하화 하는 장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헬리콥터가 클수록, 화물을 하화해야 하는 장소가 높은 장애물에 둘러싸여 있는 경우 인양줄의 길이는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양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조종사는 고도(高度)감에 매우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무사고로 운전을 한 경력이 있는 택시운전기사라 할지라도, 갑자기 대형버스를 운전하라고 하면 결코 쉽사리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기다란 트레일러를 끌고 가야 하는 화물차를 운전하라고 한다면 아마 더더욱 곤란해할 것이다. 하물며 공중에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건물과 장애물 사이를 오가야 하는 헬리콥터에 긴 줄로 화물을 매달아 놓았다고 상상해 보면, 조종사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1,000시간 가까이 비행을 했지만, 외부 화물 공수 임무는 두 손에 꼽을 정도로 경험이 적다. 그마저도 정조종사가 아닌, 부조종사로 임무를 수행했을 정도이다. 그만큼 외부 화물 공수 임무에 투입되는 조종사는 임무 수행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풍부한 임무 경험을 바탕으로 어떠한 위급 상황에도 대처가 가능한 인원이어야 할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아를 해보니, 아기를 데리고 외출해 있는 모든 시간이 '외부 화물 공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과 똑 닮아서 매우 놀랐다는 사실...!   



  지난주 주말 저녁, 아가를 데리고 '매드포갈릭'이라는 음식점을 방문했다. 아가의 백일 선물로 받은 상품권을 여태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급 나들이를 결정한 것이다. 카페, 공원도 별일 없이 다니고 있고, 마트, 쇼핑몰 그리고 문화센터도 큰 어려움 없이 오가고 있으니 음식점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별것이었다. 별별별 천지... 



  여러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많이 다녀봤지만, '매드포갈릭'은 처음이었다. 그냥 아웃백이나 빕스와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음식점에 들어서자 컴컴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순간 아이를 동반한 테이블이 몇 군데나 있나 눈으로 세어보았다. 서너 군데 눈에 들어왔지만, 아가 의자를 쓰고 있는 테이블은... 없었다. '큰일을 겪겠구나'... 싶었다.



  아가는 연신 고개를 '훽훽' 돌려가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었고, 분주하게 오가는 종업원분들과 손님들에게 인사를 날리느라 바빴다. 엄마가 먹여주는 맘마를 '냠냠' 잘 먹다가도 '꽥'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손에 쥐고 있는 파프리카와 오이를 던지고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에 손을 뻗으며 엄마·아빠의 애를 태웠다.



  아가가 소리를 '꽥꽥' 질러댈 때마다 연신 주위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를 외쳤다. 본의 아니게 여러 손님들의 오붓한 저녁식사 시간을 망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죄지은 마음으로 밥을 먹다 보니,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이대로 식사를 이어가다가는 분명히 체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남은 음식을 포장하기로 하고 서둘러 음식점을 나왔다. 



  '화물을 헬리콥터 '밖에' 매달고 비행하는 외부 화물 공수 임무처럼, 집 '밖에서' 벌어지는 육아 활동은 육아 세계의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임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 시간이었다. 어찌 되었든! 어떤 물건도 안 상하고, 누구 하나 안 다쳤으면 성공적인 임무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떤 조종사도 태어날 때부터 모든 임무에 대한 경험이 풍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아라고 다르겠는가!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아가도, 모든 게 처음인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점점 베테랑이 되어가겠지. 


  그러니 여러분... 조금만 이해해 주는 것으로... 해주시겠어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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