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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r 09. 2024

센스 있게 ! 씨익 -


출처 : https://youtu.be/VNXT8WLlrWc?si=NLkvoC7jduboXvGX




  어느 맑은 하늘의 가을날이었다. 후배 부조종사와 함께 기지 관제권에서 교육 비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최종 접근을 위해 항공기 기수를 활주로에 정대시킨 상태에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속도를 줄이며 자세를 들어 올리기 시작할 무렵, 관제권에서 비행하던 다른 항공기의 교신 내용이 헤드셋을 통해 귀에 들어와 꽂혔다.



  "Tower! ###000, Turning base. 

   Simulated one engine failure. Shallow approach. Roll-on landing"

  "###000, Cleared for the option" 



  교신 내용을 듣자마자 생각했다. '비상절차를 훈련 중인 항공기구나. 아무래도 우리 항공기와 간격이 너무 좁은 것 같은데? 우리가 착륙하면 뒤에 들어오는 조종사의 마음이 급해질 수도 있겠다. 관제사도 애가 탈 것 같고. 아무래도 복행 해야겠다!' 재빨리 부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착륙을 포기한다는 의도를 알린 뒤, 타워를 호출하여 '복행(Go-around)'을 통보했다.



  사실, 우리 항공기가 굳이 복행을 할 필요는 없었다. 뒤이어 들어오는 항공기보다 우선하여 착륙 인가를 받은 상태였고, 규정이나 지시를 위반한 사항도 전혀 없었다. 그저 인가받은 위치에 정상적으로 착륙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터였다.



  다만, 우리가 착륙한 뒤 바로 이륙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관제사는 다급하게 우리 항공기를 호출하며 지체 없이 이륙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여 진입하는 항공기의 활주 착륙을 취소시키거나 진로를 변경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관제사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어려운 훈련을 하고 있는 동료 조종사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내가 몸으로 배우고 익힌 Airman-ship과 Air-sense는 복행을 외쳤다. 물론, 나의 판단이 100%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항공기가 안정적으로 상승할 때쯤, 부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기장으로서 이와 같이 결정한 이유를 덧붙였다. 내가 선택한 행동이 정답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그로부터 며칠 뒤, 비행 브리핑에 참석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브리핑을 주관하던 비행대장님께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기장! 관제사가 아주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던데? 센스가 장난이 아니라고 말이야~ 굳이야 굳!'. 순간 당황하여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아마 그날의 일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였다. 



  브리핑을 마친 후, 관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관제사는 나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날의 일을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상절차를 훈련하는 항공기가 있을 경우, 비행대장은 관제탑에 위치하여 훈련을 감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내가 비행하고 있을 당시, 비상절차를 훈련하는 항공기도 함께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행대장은 관제사 근처에서 훈련하는 항공기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상절차를 훈련하는 항공기가 있는 경우 관제사의 업무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비행하는 만큼, 앞·뒤 항공기 간의 간격을 더욱 유심히 살펴야 하고, 활주로와 그 주변의 이상 유무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함은 물론, 쉴 새 없이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러 항공기들의 요청에 응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그 순간 역시 관제사에게는 무척이나 바쁜 상황이었고, 내가 예상한 대로 관제사는 나의 항공기가 착륙하는 즉시 이륙 지시를 내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뒤 이어 진입하는 항공기가 교신을 마치자마자, 복행을 통보하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탄성을 내뱉었다는 것, 그러면서 함께 있던 비행대장님께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전화 통화를 마쳤다. 누군가로부터의 칭찬이 기분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 내가 내린 판단과 결정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더욱 흡족함을 느꼈다.



  '센스'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센스를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력"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센스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상황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 혹시라도 나의 언행으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불편해하는 이가 있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려는 마음 말이다.



  '센스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랑을 받는다. 나는 우리 아가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기보다, '센스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와 장소에 맞게 재치 있는 농담도 던지며, 동시에 적당히 눈치도 볼 줄 아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커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빠가 먼저 센스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할 텐데...



  오늘도 어떻게든 자신을 웃겨보려는 노잼(재미없는) 아빠의 노력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우리 아가는 아빠에게 센스 있는 썩소를 날려준다. 씨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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